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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Dec 30. 2021

해롭지만
해하지 않을


오늘 밤은 끝끝내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어젯밤 생각했다.


꼬박 여덟 시에 멈춰있던 시곗바늘이 하릴없이 돌아가 다음날 오후 두 시를 넘겼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시간은 여덟 시. 미래의 배우자가 궁금해 칼을 물고 거울 앞에 섰던 열두 살의 열두 시가 아닌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저녁 여덟 시. 경찰은 동생이 여덟 시에 떠났다고 추정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동생은 친구와 메시지를 나누던 중 일곱 시 반부터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동생의 스마트폰을 잡아든 시간이면 분명 취조 후일 텐데 그날의 기억은 잘게 쪼개져 이리저리 섞인다. 논문만큼 두툼한 종이를 들고 다니다가 모두 떨어뜨린 것처럼 내가 배우고 익힌 시간의 흐름에 좀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유골함을 가리키며 내 동생이라 허락받은 뒤 비행기에 태웠던 일이 집에 있을 때 경찰이 문을 부술 듯 두드린 일보다 앞선 기억 같다. 조각난 시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것뿐이다. 키보드를 누르는 힘만 있다면 모든 일은 지난날이다. 어떤 일이 앞이고 어떤 일이 뒤든 상관없다.


묘사를 못한다. 우는 것도 그냥 엉엉 울었다고 표현한다. 너무와 아주 없이는 대단한 표현을 못하는 것 같다. 전에 쓴 책을 읽었는데 아주가 너무 많아서 아주아주 부끄러웠다. 문장 하나에 눈물과 미소가 고이는, 기깔나게 묘사를 잘하는 에세이를 읽어서인지 더 부끄러웠다. 어떻게 이런 글을 두고 사람들에게 에세이를 운운하며 작가라 나를 소개했는지 창피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고 아니야 나는 잘할 수 있어, 앞으로 더 잘해보자, 나는 나의 길을 닦는 거야, 라고 건강하게 다짐하면 좋으련만 시간은 여덟 시에 흘러서 모든 게 다 망가진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창밖은 잠잠하고 평화로운데 나만 홀로 남겨진 방은 폭풍이 치고 있었다.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장면을 떠올렸다. 막내와 엄마는 차마 못 보고 나와 아빠만 본 사진의 잔상만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똑똑하게 살아남았다. 어쩌면 이 밤이 마지막 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났다. 생각에서 확신으로 굳어지자 겁이 났다.


왜냐하면 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아야 했다. 살자는 책을 쓰고 있는데 저자가 살지 않으면 그 책은 거짓말투성이인 책이 될 게 뻔했다. 꼬박 일주일 동안 철학서와 교양서를 가리지 않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았다. 어떤 이는 의미를 아예 찾지 말라고 했다. 어떤 이는 각자의 의미가 있으니 누가 의미를 대신 짚어준다고 하더라도 기대보다 통쾌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했다. 그러자 나만의 답이 서서히 생겨났다. 여름에 발표할 책에 그 의미를 풀어놓을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었다. 물론 금세 휘발되는 자신감이었다. 갑작스레 폭식을 하고 싶어졌다. 쓰지 말자고 공표한 플라스틱을 한가득 쌓아놓고 데우거나 부치지 않은 육식을 하고 싶었다. 배달 앱을 켜다가 대신 일기장을 펴서 취한 것처럼 난장판으로 글을 썼다.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파편화되어 날아다니는 머릿속의 기억처럼 날리는 서체로 글자를 썼다. 제목, 건강함과 건강하지 않음. 진짜 건강함은 일주일 동안 만족스러운 거고 건강하지 않은 건 그날 그 시간만 만족스러운 것이므로 지금 먹을 수 있는 무언가면 모두 입 안에 집어넣는 것은 건강하지 않음의 증거다. 그러니 나는 내일을 위해 폭식과 과식을 포기해야 한다. 이미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는데 또 먹고 싶다는 건 가짜 배고픔이다.


가짜 배고픔이면 뭐 어때, 어차피 나는 오늘만 살다가……. 생각에 앞서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경험이었다. 펜으로 쓰인 글자를 펜으로 박박 지웠다. 이럴 때가 있다. 평범한 낮에는 혼자 있어도 식탁에 차릴 요리를 하고 보이는 방과 보이지 않는 냉장고를 깨끗하게 치우고 마음을 글로 단정하게 표현하자고 말하지만 저녁 여덟 시에 가까워지면 모든 일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심지어 허언증이 다시 생겨난 것처럼 느껴진다. 내 얼굴과 몸마저 만족스럽지 않다. 다시 태어나 리셋하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이런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문장을 입으로 꺼내 읊었다. 그러면 이러지 않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러지 않을 날도 있으리라는 야트막한 희망이 틈새를 비집고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다. 조이는 심장을 느끼며 이런 때와 이런 날을, 인내심 없는 내가 결국 버틴 덕분에 다음 날을 무사히 맞았다. 나를 해하지 않았다. 어젯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척 해로웠으나 눈을 감고 호흡에 열중하며 고비를 넘겼다. 오늘의 여덟 시도 무사히 지나가야 한다. 장면은 쪼개져 이리저리 날아다녀도 이런 때가 있으니 이러지 않을 때가 있으리라는 주문만은 꼭 붙잡아두어야 한다. 손바닥이 뜨겁도록.


아픈 날짜와 아픈 시간이 서서히 다가와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안녕을 보낸다. 해가 저물고 달이 흐린 밤에 아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낮부터 힘을 보내면 오늘 밤을 견디기 어려워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결핍이 잔뜩 서린 부족한 문장을 엮었다.


이런 때가 있으면 이러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

이런 때가 있으니

이러지 않을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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