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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n 30. 2024

편한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


5. 다섯 번째 손톱



저마다의 수다로 북적이는 버스 안, 내 말이 애인 '건'에게 들리지 않아 조금 목소리를 높여 얘기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후문 앞에 홀로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뒤를 돌았다.


"저기요."


후문을 기준으로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 나와 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가씨 말이에요."


그 사람이 한 번 더 목소리를 냈다. 나는 당황해져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저요?"라고 되물었고, 사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좀 하세요. 시끄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그러고서는 대답을 바란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얼결에 소란의 사건이 표적이 된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 건에게 버스에서 내리자고 했다. 원래 같으면 도망치는 것보다 직면하는 게 낫고,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 피하는 것보다 물어보는 게 낫다고 주장하던 건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도 알겠다고 답하고 우리는 버스 카드를 찍고 집까지 한 시간 거리를 내리 걸었다. 왜 나였을까, 사람들이 그렇게도 시끄러웠는데 왜 나를 굳이 골라서 망신을 줬을까. 도통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다른 버스를 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한 시간 동안 미련하게 집을 걸어갔다는 자체만 봐도 얼마나 기분이 상했나 싶다.


괜한 짜증을 받은 나의 짜증은 고스란히 건에게 돌아갔다. 어떻게 나를 가리키고 조용히 하라는 사람에게 여기 버스 안이 다 시끄러워요, 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해 주었냐고 서운해하다가 그 서운함을 천천히 짜증으로 바꿨다. 너는 원래 그래. 나를 지켜주지 않아. 저번에 쭈꾸미 집에서도, 갑자기 우리 옆 테이블이 실내에서 흡연을 해서 나와 언성을 높일 때 도와주지 않았잖아. 건이 큰 소리를 못 낸다는 사실을, 그래서 주문을 해야 할 때도 홀이 바쁜 날에면 종업원조차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건이 나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게 곤란한 순간에 처할 때도 눈만 굴리는 건을 보면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한 시간 내내 말만 하며 걷다 보니 감정이 해소되기는커녕 건에게 싸움을 걸고 있었다.


편한 사람이라고 선을 넘지 말 것,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내가 편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 점을 기억하고 배려할 것. 모두 나의 가치관이었지만 천천히 무너졌다. 내가 내 집에서도 짜증을 못 내나? 집에 아무리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건이라면 충분히 내 상황을 아니까 들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그런 속마음을 가지면서 온통 건에게 짜증을 부렸다. 빨리 나가야 하는데 셔츠 단추를 잠그고 있으면, 셔츠 안에 반팔티를 입었으니 셔츠는 그냥 벌려두고 우선 나가면 안 되냐고 성질을 냈다. 건이 차분하게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천천히 잠가도 되잖아. 우선 나가면 안 될까?" 이렇게 예쁘게 말해도 될 걸, 왜 그렇게 짜증을 불쑥 내냐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어서 대응하기 어려웠지만 이미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내게 대응법은 많았다. "그러길래 왜 먼저 그 말을 안 해? 모르니까 짜증을 내지!" 건은 나의 짜증을 고스란히 받았다. "네가 요즘 화가 많아진 것 같아."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할 때도, "다 화가 날 일이 생각나는 걸 어떡해!" 하면서 혼잣말로 구시렁대었다. 걸어갈 때도 구시렁, 누울 때도 구시렁, 앉을 때도 구시렁. 대체로 짜증이 나는 사건을 복기하거나 간혹 욕이 나오는 구시렁거림도 있었다. 옆에는 늘 건이 있었다. 우리는 세 번째 봄을 함께 맞이한 관계고 계속 붙어있으니까 이 정도 짜증 섞인 말은 당연히 감수하며 들어야 하지 않냐는 이성적이지 않은 마음이 자꾸만 솟았다. 건이 말했다.


"짜증을 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 짜증이 나 때문에 나는 짜증이 아니라면 그 짜증 섞인 말을 듣는 사람은 너와 나뿐이야."


비교적 내밀한 공간에서 짜증을 내는 나였기에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건에게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무척 억울했다. 건과도 함께 있고 싶고, 짜증도 함께 내고 싶다. 회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고, 잠을 못 잔 탓에 너무 졸려서 아침에는 업무도 하지 못했고, 그러다 실수를 해서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모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을 살펴보면 그 모든 건 다 짜증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나는 기쁜 일보다는 화나는 일을, 즐거운 일보다는 괴로운 일을 말하는 데 익숙했다. 다섯 번째 손톱이었다. 원래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커지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니까 나는 후자에 몰입했다. 슬픔을 나눠서 반이 되게 만들자. 건에게는 허락도 받지 않고 홀로 그렇게 생각했더니 건만 일방적으로 짜증을 듣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화났던 일을 잔뜩 말한 후 씩씩거림이 줄어드는 순간이면 "즐거운 일은 없었어?"라고 묻는 건에게 왜 그러냐고, 나는 즐거운 얘기만 해야 하는 사람이냐고 또다시 짜증을 냈던 날이 떠올랐다.


짜증을 숨기기 쉽지 않다. 우울은 많이 줄어들고, 무기력도 덩달아 줄었는데 그만큼이나 짜증이나 분노가 생긴다. 왜 하필 나지? 왜 내게만 이런 짜증 나는 일이 벌어진 거지? 원래 이 맛집은 나만 아는 집이었는데 언제부터 웨이팅이 한 시간이나 생긴 거지? 렌즈를 끼고 싶은데 렌즈 부작용으로 각막염은 왜 생겨서 회사에 안경 끼고 다녀야 하는 거지? 글쓰기 모임에 가고 싶은데 왜 그때 주말 근무가 생긴 거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부정적인 사고는 입 밖으로도 그대로 나왔다.


키우는 식물에게는 예쁜 말만 해주면서, 오히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회사 동료에게는 재밌는 얘기로 그들을 웃기게 하면서 정작 편하다고 생각한 건에게는 무척 소홀했다. 더는 건을 괴롭히지 말아야겠다고, 나아가서는 내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짜증 섞인 하소연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되뇐다. 편한 사람을 대할 때도 선을 넘지 말 것, 나는 그 사람을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그러지 않을 수 있으니 그 점을 기억할 것. 여기에 조항 하나가 추가되었다. 건이 내 경계 안에 완전히 들어왔다고 착각하고 어떤 나쁜 감정이든 받아들여줄 거라는 오해를 풀 것.


후일담

땀이 많은 성향이라 얼굴 다한증을 막는 패드를 약국에서 샀다. 그런데 여기 소량의 마취제가 든 건지 바를 때마다 기절할 만큼 졸려서, 어제 일정을 끝내고 지하철과 카페에서 건의 어깨에 기대에 수면 마취 든 것처럼 곯아떨어졌다. 건의 어깨에는 내 침과 미처 지우지 못한 파운데이션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당황한 내게 건이 말했다. "집에 가서 지우면 괜찮아." 비싼 만큼 아끼는 셔츠에, 파운데이션과 흥건한 침이 잔뜩 묻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도리어 잘 잤냐고 묻는 건을 보니 문득 울고 싶어졌다. 이 사람을 데리고 한동안 아프고 힘들고 괴롭다는 이유로 온갖 짜증을 냈다는 게 미안했다. 나라면 내 셔츠에 휴지를 갖다 대고 박박 지우느라 바빴을 테니까.



토요일 연재인데, 어제 도서전에서 사인회를 하고 곯아떨어져서 글을 올리지 못해 부랴부랴 일요일 아침인 오늘 올립니다. 잘 읽고 계신가요? 구독자 님들, 독자 님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이번 연재가 어떻게 다가오시는지도 궁금하고요. 답글은 바로 달지 못하지만 꼭꼭 챙겨보고 뒤늦게라도 달고 있습니다. 연재 집필에 힘이 잔뜩 되는 소통과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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