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루틴과 무용한 계단

by 현요아


아침 루틴이 달라졌다. 노트북 전원 대신 청소기 전원을 누른다. 의자를 들고, 테이블을 밀고, 적어도 사람의 눈에 먼지가 들어오지 않을 만큼 정도는 청결하게 유지되도록 하루하루 곳곳을 닦는다. 세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모여와 여기에서 단소를 불 테니까. 나뭇가지에 조명을 걸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 테니까. 아이들이 조금 더 쾌적한 공기를 맡을 수 있도록 물기를 짠 수건으로 의자를 닦는다. 곧 아이들이 온다. 팀장 대신, 부장 대신, 이사 대신 아이들이 온다. 같은 긴장이지만 지금의 긴장이 더 좋다. 이 긴장은 침대까지 따라오지 않는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이곳을 떠나니까. 잠옷으로 갈아입고 노트북 앞에 앉는데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 시간에 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의 영역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넘어갔다. 영상과 장표가 잘 다듬어지도록 손가락을 움직이는 대신 작은 소망을 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를 잘 했다는 마음으로 잠에 들기를.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우러러보기 쉬운 자리에 가보기도 했고, 웅크린 몸으로 보호소에 누워 쪽잠을 청하기도 했다. 오천만 원이 넘는 연봉 계약서에 거뜬히 사인을 하기도 했고, 가족관계증명 열람 제한을 위해 서명을 하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는 표정을 감추고, 또 어느 곳에서는 표정을 드러내야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서 있는 계단은 어디인가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더는 계단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는 있다가 사라진다. 없었고 있다가 다시 없어진다. 쥔 것이 사라질까, 도망갈까, 잃어버릴까, 잊힐까 조마조마할 필요 없다. 나는 없었고 있었던 기간이 없었던 기간보다 훨씬 짧다. 없었던 시간이 있었던 시간보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길다. 나는 언제나 네가 될 수 있고 당신은 언제나 내가 될 수 있다.


내가 영어 영재였고, 불수능 국어에서 1등급을 맞았고, 피아니스트를 위해 예고를 준비했으며, 각종 그림과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건 회사에서는 그리 필요 없었다. 프로젝트를 얼마나 수주했니, 광고주가 다음 계약을 좋아하니, 대표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니, 눈 밖으로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았니, 같은 것들에는 나의 웅변과 토론 실력이 힘을 잃었다. 여기서는 힘을 얻었다. 해설집을 보면 빠르게 이해하는 나를, 답을 알려주지 않고 옆에서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내게 눈을 빛낸다. 우리는 베스트 도전과 웹툰 얘기를 한다. 굿즈와 팬덤 얘기를 나누며 교집합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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