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포카에서 블러핑(Bluffing), 일명 뻥카라는 게 있다.
좋은 패를 가진 사람의 행동을 취하면서 자신이 좋은 패를 가지고 있는 척하는 것이다. 자신의 패가 좋지 않을 때 나쁜 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춘 채 배팅해 상대를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압박해 내 조건을 들어주거나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게 만든다. 상대가 내 패를 높은 패로 인정해준다면 나는 낮은 패로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내 패를 인정하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나는 큰 손실을 보게 된다. 그래서 ‘뻥카’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게임이론의 대가 로버트 오먼 교수는 게임에서 최고의 전략 중 하나가 ‘블러핑’을 꼽았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딴 사람, 돈이 많은 사람에게 뻥카를 쳐야 한다는 점이다. ‘부자 몸조심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에 내 패가 좋더라도 상대방의 패를 인정하고 죽는다. 괜한 모험으로 지금까지 딴 돈, 누리고 있는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랜드 펜윅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약소국이다. 지난 6세기 동안 포도를 경작하여 와인을 수출하여 살아왔다. 20세기에 들어서 인구가 증가하여 식량과 피복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수출을 늘여 더 많은 수익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다른 방법이 없기에 판매하고 있는 와인을 딱 10%만 물을 타서 양을 늘이자는 의견을 내세운 희석당과 그것에 반대하는 반희석당으로 국론이 분열되었다. 선거에서도 다수당이 나오지 않아 결정을 못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랜드 펜윅이 사는 방법은 미국과 전쟁에서 지는 것뿐이었다. 전쟁에 져서 미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해결하자는 것이다. 결국, 그랜드 펜윅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중세 무기로 무장한 군인이 미국을 정벌하러 떠난다. 미국은 이들의 선전포고를 듣고 자신의 기준으로 그랜드 펜윅을 생각한다. 강력한 폭탄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인정한다. 부자 몸조심이다.
Q폭탄을 손에 넣게 되고 폭탄을 만든 코킨츠 박사를 인질로 잡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미국으로부터 항복을 얻어낸다. 전쟁에 져서 지원금으로 살려고 했던 그랜드 펜윅은 혼란에 빠진다. 강력한 Q폭탄으로 인해 여러 나라로부터 침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하지만 강력한 Q폭탄을 가지고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핵무기 폐기 조약을 얻어낸다. 또한 국제연합은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이니 약소국가 연합을 새롭게 만든다. 약소국가가 강대국을 감시하고 핵을 폐기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세계는 평화롭게 살았다. 그들이 그렇게 겁내던 Q폭탄은 실패작이었다. 있지도 않은 강력한 폭탄에 미국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모두 내어주었다.
아일랜드 출신 미국인 레너드 위벌리가 쓴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냉전 시대를 풍자한 소설이다. 미국, 소련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연합 등에 대한 비판이다. 낭만적인 발상이다. 강력한 나라인 미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자신과 동등한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그리고 강대국들 모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세계평화를 말하지만 동양에 대한 생각은 없다. 20개국 회의에 참석한 나라 중에 동양권은 없다. 중동을 동양으로 생각한다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을 뿐이다.
김정일이 이 책을 동경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확인이 된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약소국 그랜드 펜윅과 북한은 많이 비슷하다. 자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니 외국, 특히 서방의 지원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핵을 가지고 그들과 협상을 한 점도 유사하다. 둘 다 뻥카를 질렀고 그들이 인정해 주었다. (북한은 뻥카인지 찐카인지 말이 많지만, 찐카라는 설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결과는 다르지만.
현실은 작가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록 소련이 붕괴되었으나 그 자리에 러시아가 국가이기주의로 자리 잡았다. 각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쫒는다. 지금은 무기가 아니라 자본으로 약소국을 착취한다. 자신의 모델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말하며 따르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신자유주의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그 힘을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지금은 국가보다는 자본의 이익에 더 충실한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이 정치를 아우르고 있다. 정치는 자본의 ‘충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랜드 펜윅같은 강력한 추진체를 가질 수 있을까. 탄허 스님은 “인류를 파멸시킬 세계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자동적 핵폭발이 있게 되는데, 이때는 핵보유국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 했다. 이어 “남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신도 살고 남도 사는 법”이라며 “수소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민중의 맨주먹뿐이다”라고 역설했다. 이제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해야 할 뿐이다.
덧_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레너드 위블리, 뜨인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