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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상곰 Jun 03. 2017

벚꽃엔딩 두 번째

하나 요리 당고, 꽃 보다 남자

풍류라는 것을 모르고 삶이 건조하던 때가 있었어. 도쿄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이야. 그때 처음 벚꽃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직장 동료들과 꽃놀이를 한 번 갔었는데, 꽃 밑에서 먹고 노는 게 너무 즐겁더라고. 철만 되면 사람들이 벚꽃 밑으로 달려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지. 


벚꽃을 아래에서 보니깐 더 황홀하더라




벚꽃이 만발하던 어느 주말. 꽃 보러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거야. 그렇다고 집에 있기는 싫고, 혼자라도 가기로 했어.


동쪽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야마노테센(山手線) 신주쿠역(新宿駅)에 내린 다음 미로같이 복잡한  지하를 헤매다가 동쪽 출구로 빠져나왔어. 유명한 문구점 세카이도(世界堂)를 지나서 조금 걸으면 신주쿠교엔 (新宿御苑) 입구에 도착하게 돼.  신주쿠역에서 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면 도착했던 것 같아.


이런 빌딩숲을 지나면 공원이 나올꺼야.




편의점에 들어가서 도시락과 맥주를 골랐어. 그때 주로 골랐던 도시락은 치킨 계열. 아무래도 맥주에는 튀긴 닭이 최고니깐.


갈릭 치킨 도시락




공원 입구에 도착했어.  입장권 판매기에서 200엔을 넣고 티켓을 구입해.  그리고 지하철 개찰구 같은 입구를 지나면 공원이 펼쳐져. 벚꽃나무가 1300그루라고 하니 말이 필요 없지. 잔디밭도 넓고 벚꽃은 아름다워.  그리고 사람들도 벚꽃나무 수만큼 많아. 





"자, 어디에 앉을까."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자리를 피고 앉는 것이 왠지 어색했어.



"저 남자는 혼자 왔나 봐?", "친구도 애인도 없나 봐?"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어. (물론 맞는 말이었지만 -_-;;;; )


이제 느긋하게 만화책이나 읽어볼까~




쭈뼛쭈뼛 거리면서 벚꽃 아래에 자리를 폈어. 그리고 도시락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어. 아침부터 움직였더니 배가 고프더라고. 꽃을 보면서 도시락을 먹으니깐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었어. 햇살은 따뜻하고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당연히 훌륭하고, 하얀 밥은 꼬들꼬들 맛있고. 이래저래 기분이 좋아졌어. 그랬더니 주변을 신경 쓰는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고.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벚꽃 아래에서 모두 함께더라고.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모두 각자의 꽃놀이에 집중하고 있지 타인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 뒤로는 혼자서도 공원에 자주 가게 되었어. 나중에는 바다에도 혼자 가게 되더라. ㅋㅋ

책 한 권, MP3플레이어. 담요 한 장.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도시락과 맥주였어.


역시,
하나 요리 당고 (花より団子)

꽃보다 남자.
금강산도 식후경.









결혼하고 오사카에서 살 때 오사카성 공원 (大阪城公園)은 우리의 훌륭한 운동코스였어.

벚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평범한 봄날.

산책을 하는데 정말 익숙하면서 사랑스러운 향기가 나는 거야. 바로. 고기 굽는 냄새. 옛날 캠핑 가서 먹었던 그 고기의 향기. 원래 공원에서 취사가 안될 텐데 이게 뭔 일인가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니깐, 한 달 동안 지정된 장소에서 바베큐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게시판이 세워져 있네. 그렇구나 벚꽃 아래에서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거구나!!!! 

정말 멋진 오사카성 공원




그때부터 꽃보다 바베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저런 캠핑도구를 준비해서 왔구나."

"저기는 저런 고기를 먹네. 소시지 맛있겠다."

"채소도 구워 먹고~~"

 
한 달 내내 바베큐하는 것을 보니깐, 공원 전체가 구워지는 느낌이었어


지글 지글 불타고 있습니다.




나도 저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즐기고 싶었어. 나도 고기 잘 굽는데. 내가 저기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아내에게 계속 노래를 했지.


바베큐하고 싶다. 바베큐하자.


결국 제일 작은 것으로 샀어.




그 당시엔 용품들을 사서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에 마음으로만 계속 바베큐 노래를 불렀어.

캠핑용품 코너에 가서 바베큐 불판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만 엄청 했어. 마음속의 열망만 계속 키웠어.


아! 캠핑하고 싶다. 바베큐하고 싶다.


이래야 캠핑의 맛이~~




벚꽃이 다 사라지고 파란 잎이 무성하게 나왔을 즈음, 결국은 자그마한 바베큐 불판을 하나 샀어. 숯을 사고 발화제를 샀어. 슈퍼에서 고기와 채소를 샀어.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고 맥주를 넣어 두었어.
집의 작은 베란다에서 바베큐 파티를 시작했어.

내가 좋아하는 고기와 소세지를 준비하고




숯이 벌겋게 달구어지고 그 위에 고기를 얹으니깐 반가운 소리가 나기 시작해. 지글지글.

고기의 육즙이 떨어지면서 불이 올라오기도 하고,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지기 시작해.

아내가 좋아하는 채소와 버섯.





뜨거운  고기를 입에 넣고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




What a wonderful world!



바로 이 맛에 바베류를!!!





난. 벚꽃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나 봐.

역시,
하나 요리 당고 (花より団子)

꽃 보다 남자.
금강산도 식후경


그래!! 이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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