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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산프로 Nov 17. 2019

맛을 찾는 브런치_#.1 BALVENIE

 한..몇 달 전부터였나? 아니 정확히는 1~2년전 부터였던거 같은데 먹는 양이 줄었다. 아마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쪘는데 서른이 넘으니까 이제 아무생각 없이 먹으면 살이 찌더라...그래서 적당히 조절도 할 겸 해서 약간씩 덜먹다보니 먹는게 확실히 줄었다. 그렇다고 몸이 좋거나 그런건 아니다. 그냥...뭐랄까...평범...하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조금 먹어도 배를 채울 수 있게되면서 맛있는거를 찾게되었다. 그냥 퇴근하고 나 혼자 가볍게 먹는 것들이 그렇게 맛있고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더라...내가 상상하는 내 모습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쯤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냥 아재겠지...그래서 내가 먹었던 것들을 기록하고...그 맛을 최대한 자세히 남겨서 삶이 지치고 힘들때면 꺼내 먹어보려한다.


#.1 THE BALVENIE 12

싱글몰트 위스키중에...대중적이면서도 나같은 초심자들이 입문하기 좋은 위스키같다.(솔직히 자꾸 위스키라고 하니까 좀 건방져보이는데....그래도 위스키는 위스키니까!) 싱글몰트위스키는 그냥 보리로만 만든 순수 위스키라고 생각하시면 된다더라. 우리가 잘아는 발렌타인 같은건 보리 외에 다른 곡물을 섞어서 만든 위스키들을 함께 섞어만든 블랜디드 위스키라더라. 어쨌든 내가 먹은 발베니는 이렇게 생겼다. 가격은 10만원 정도였다.

색감은 굉장히 영롱한 노란색이다. 황금빛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 것 같다. 흔들어보면 완전 물같지는 않고 감기약 시럽 같은 바디감이다.(이럴때 바디감을 쓰는게 맞는건가?) 향은...위스키 특유의 강한 술냄새를 제외하고 말해보자면...굉장히 달달한 느낌이 난다. 그리고 뚜껑이 코르크와 나무로 되어있어서 그런지 뭔가 오크통 특유의 향을 듬뿍 담은 느낌이다.


 맛은...솔직히 그냥 겁나 쓰다. 대신...뭐랄까 향이 되게 좋다. 위스키를 컵에 따를 때 한 두 방을 흐르는 술을 손바닥에 문지르고 난 이후에 손의 냄새를 맡아보면 향을 좀 더 음미해볼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맛을 따지는 편이 아니지만....내돈주고 산 10만원짜리 술이다. 어떻게든 즐겨봐야한다. 참이슬 후레쉬 먹는 것 처럼 털어넣으면 안된다.


 개인적으로....두 잔 이상 연속으로 먹는건 추천하고싶지 않다. 두 잔을 넘어가면 그냥 술이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는 일찍 퇴근하고 집에와서 밥을 먹기 전에 언더락잔에 얼음 없이 한 잔을 마셔준다. 그냥 한 두 모금 정도 마실 수 있을 만큼만...첫 모금을 딱 마셔주면...특유의 오크향과 달달한 느낌이 미친듯이 배만 고팠던 그 느낌을 조금 진정시켜준다. 그리고 위스키 특유의 쓴 맛이 머릿속에 가득차는데...난 이느낌이 너무 좋다. 솔직히 술이 써서 싫은 분들은....어쩔 수 없다. 내 말에 1도 공감이 가지 않을 것이다.

 가끔 장모님이 주시는 한우 부채살이 있는 경우 유튜브를 켜서 백종원아저씨가 집에서도 맛있게 스테이크 굽는 법을 보면서 통후추를 뿌려가며 정성스럽게 구운 스테이크를 햇반과 함께 때려준다. 


 이럴땐 역시...술이 있어줘야 한다. 고기를 한 두점쯤 먹고 얼음 없는 발베니를 한 모금 정도 때려넣으면...뭐랄까...소고기 특유의 육중한 맛이...발베니의 중후한 쓴맛으로 좀 가벼워진다. 그리고 솔직히...이런거 다 때려치우고 그냥 내가 엄청 성공한 남자같다. 퇴근 후 집에서 한우 부채살 스테이크에 발베니 때리는 삶이면.....충분히 성공한 삶 아니던가? 가끔 그럴때면...진짜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발베니....발베니 하나가 나에게 선사해준 삶의 즐거움이 참 여러개가 있었다. 대학원 과제 하면서 하기 싫어서 언더락으로 때리는 발베니....마트에서 마지막 상품으리고 거의 50%할인해서 파는 회에다가 스트레이트로 발베니 하나 딱 때려넣고...하는 이런 것들....그리고 뭔가 비가오는 느낌적인 밤에 내 방에 혼자 앉아 재즈피아노 노래를 들으며...한 잔 하면...그냥 좀 성공한 사람 같이 느껴지는게 좋다.


 이젠 다 없어지고 병만 남은 발베니....10만원 써서 한 달정도 참 즐겁게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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