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희 Oct 31. 2019

비싼 향수 안 사도 되는 이유

향수보다 더 향기로운 거

내게서 나는 향을 믿어보기로 했다.



첫 향수 

처음 과테말라에 이민 갔을 때가 생각난다. 엄마가 향수 한 병을 줬다. 짙고 강한 향이 나는 향수였다. 이미 우리보다 십 년 일찍 이민 생활을 한 이모가 사촌 언니와 오빠가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곳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한테 늘 마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니깐 향수를 꼭 뿌리고 다니라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한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곳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한국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이모 말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현지인들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그리고 타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나에게 잘 맞지도 않은 향수를 손에 꽉 쥐었다.  



향수와 된장찌개 중 어떤 것이 더 냄새가 날까?

등교하는 날이 다가왔다. 떨려서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간단하게 빵을 먹었다. 방금 씻고 나와서 좋은 비누 향이 내게서 은은하게 났다. 그런데도 엄마가 준 향수를 손목에 한 번, 목에 한 번, 옷에 한 번 뿌렸다. 혹시 몰라서 손목에 한 번 더 뿌렸다.  


스쿨버스가 다가오자 동생과 함께 버스에 탑승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버스 안에는 우리 남매 말고 다른 남학생 한 명밖에 없었다. 그 남학생은 창문에 머리 박고 바로 잤다. 나는 버스가 정거장에 설 때마다 나를 지나치는 학생들이 혹시나 코를 찌푸릴까 봐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그때 한국인 남매가 버스에 탔다. 아침에 된장찌개를 먹고 왔는지 남매가 지나갈 때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났다. 하필 우리 뒤에 앉았다. 어린 마음에 다른 학생들이 된장 냄새가 나한테서 나는 냄새라고 착각할까 봐 걱정이 됐다.


그 남매는 둘이 떨어져서 한 칸씩 따로 앉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현지인 남매가 그 한국인 남매 옆에 한 명씩 앉았다. 서로 친구였는지 학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수다를 떨었다. 도중에 웃음소리도 들렸다. 버스가 달리니 창문 통해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된장 냄새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문 밖으로 새로 다닐 학교가 보였다. 내가 뿌린 향수에 취해 어지러웠다. 된장 냄새보다 더 지독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김치 냄새가 나면 어떠하고 된장찌개 냄새가 나면 어떨까. 온종일 그 냄새가 옷에 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쓰는 향수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 사람이든 키가 작든 언어를 잘하지 못하든 그건 상관없었다.


물론 어딜 가나 인종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보이는 것으로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생각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물과 비누로 손목을 씻었다. 진했던 향수가 너무 쉽게 물에 떠내려갔다. 이런 향수에 나를 맡기려고 했다니. 그 후 그 향수는 몇 년간 화장대 위에서 먼지가 쌓인 장식품이 되었다.


내게 나는 나의 향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 향은 물로도 바람으로도 지워지지 않은 향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 자신을 담는 법을 배웠다.


나에게 내가 스며들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하지도 않은 나를 기억해준다면 참으로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