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나의 대학원생 이야기>에 실렸던 이 글을 조금 더 풀어서 썼습니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했던 2020년 2월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2022년 5월)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해주세요.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나는 하룻밤을 꼬박 기다려 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기약 없는 입원생활이 이어질 텐데, 나는 나갈 수 있을까?
앰뷸런스에는 나 외에도 몇 명의 환자들이 추가로 탑승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에 도착하니 별다른 입원 수속 없이 병실로 곧바로 안내받았다. 2020년 당시에는 1인 1실 입원을 원칙으로 했으나, 병실 부족으로 인해 3인 1실인 병실을 배정받았다. 당시 코로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병이었고, 나온 지 3달도 안 된 이 병에 대해 대처할 능력도 아직 완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병실 문을 들어서니 또 한 겹의 비닐 문이 나를 맞이했다. 아주 얇은 문이지만,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할 때까지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전담 병실 간호사는 방호복을 입고 비닐 문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지만, 환자들은 음압병실에서 철저히 격리되어야 했기 때문에 나갈 수 없었다. 공기도 안 통하고, 문도 열 수 없는 이 병실에 들어서니 그저 갑갑할 뿐이었다.
3인실이었기에 침대가 왼편에 하나, 오른편에 둘 놓여있었다. 독방이 아니라 뾰로통해 있었던 나는 혼자 있는 자리를 재빨리 선점하였다. 난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 옆에서 기약 없는 입원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두 분은 나보다 배는 오래 사신 것 같은 어르신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입원할 동안에는 되도록이면 마스크를 차고 생활해야 했다. 1인실이 아니라 3인실이었기 때문에 환자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마스크를 오래 쓰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못했으리라.) 자는 시간 빼고 하루 16시간 동안 마스크를 하다 보니 입이 부르트고 피부가 뒤집어지기도 했지만, 내 몸상태가 더 악화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군말 없이 마스크를 하고 지냈다.
입원 이튿날, CT 검사를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잠깐 바깥공기를 마셨다. 팔에 링거를 꽂고, 마스크를 쓰고, 몸에 비닐을 두른 후, 휠체어에 앉은 채로 간호사 손에 이끌려 CT실로 이동했다. 병원으로 먼저 입원한 단톡방 멤버들 말에 따르면, CT 찍으러 가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좋을 순간이니 그때를 즐기라고 말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 눈에 찬 공기가 들어오는 그 1분 1초를 소중하게 여겼다. 입원 기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이때였다.
휠체어에서 내려서 병실에 다시 드러눕는 순간,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졌다. '방금 그 외출이 마지막 외출이었다면?' '나 못 나가는 거 아니야?'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의 연쇄반응이 터지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좋고 너무 소중했던 순간이 끝나니까 느껴지는 허무함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