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튀김

네 번째 끼니 - 2

by 빛새

몇 년 동안 친하게 지내던 여자 사람 친구가 못 본 사이에 화장도 하고, 예쁘게 꾸미고 나왔다면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맨날 보던 모습이 아니라서 당혹스러울 수도 있고, 처음 보는 모습에 감탄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미지라서 한눈에 반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맨날 먹는 음식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다.


가족 여행으로 캄보디아 까엡에 갔을 때 겪었던 일이다. 여행 기간 캄보디아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다양한 풍경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도 먹었고, 캄보디아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음식들도 마음껏 즐겼지만, 여행 일정의 절반이 지나니 슬슬 한국 음식이 그리워졌다.


토요일 점심, 숙소 주변에 있는 바닷가 매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며칠 동안 다양한 음식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조금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눈에 익은 음식을 주문했다. 볶음밥, 햄버거, 게 튀김, 볶음국수, 오징어튀김 등 한국에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 상에 깔렸다. 네 가족 앞에 놓인 진수성찬 중에서 내 눈을 끄는 것은 바로 오징어튀김이었다.


튀김옷을 얇게 묻혀서 기름에 튀긴 오징어볶음은 오징어의 잘 익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짭짤한 간장에 찍어 먹는 우리나라 튀김과 달리, 상큼한 라임즙이 들어간 후추소금장을 곁들여 먹는다. 캄보디아식 오징어튀김은 우리나라 것처럼 표지 사진처럼 두툼하게 튀기지는 않았지만, 맛이 비슷해서 정말 놀랐다. 라임 섞인 후추소금장이 간장에 비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시큼한 라임이 열대 기후에 떨어져 버린 입맛을 돋워주는 것 같았다.


같은 음식이라도 장소와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본질은 똑같으므로 비슷한 맛이 난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삶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학교에서는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길 원했고,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성도가 되길 원하고, 집에서는 믿음직한 둘째 아들이 되길 원하고, 사회에서는 한 사람 몫을 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길 원한다. 환경에 따라 요구되는 사회적인 역할이 다르므로,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상황에 따라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지만, 사회적 가면 안의 숨겨진 내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두꺼운 튀김옷의 오징어튀김이건 얇은 튀김옷의 오징어튀김이건 다 짭조름한 오징어 맛이 나는 것처럼, 환경에 따라 수행하는 역할은 다르더라도 나만의 색채는 간직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튀김옷에 묻혀서 원재료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듯이, 역할극을 하더라도 내 본모습을 지켜내며 사는 게 건강한 삶 아닐까.


튀김옷이 두껍든 얇든, 오징어튀김은 오징어튀김이다.


PBSE8929-2.jpg 네 번째 끼니 - 갈비찜, 오징어튀김, 소고기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