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라탕

열다섯 번째 끼니 - 4

by 빛새

선을 넘을 정도로 매운 음식이 유행을 타게 된 게 언제부터였을까. 일본으로부터 고추 모종이 들어왔을 때? 신라면이 이름 그대로의 명성을 떨치던 때? 엽기 떡볶이와 불닭볶음면이 유행하던 때? 확실한 기원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몇 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매운 음식이 주류가 되었다.


마라탕 역시 남몰래 돌아온 미칠 듯한 매운 음식의 유행을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원래는 중국식 훠궈에서 고기를 맵게 하려고 먹던 소스였는데, 어느새 밥을 곁들여 먹는 찌개가 되어버렸다. 혀가 따가울 정도로 마비되는 맛이라 중국 본토에선 국물을 퍼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국밥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한술 더 떠서 우거지 해장국을 먹듯 자연스럽게 밥을 말아 먹게 되었다.


한낱 매운 증식 소스로 치부되던 음식이 주류 찌개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런 현상은 월드 클래스급 맵찔이한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콧물이 나오는 향기, 목을 치는 얼얼한 첫맛, 혀에 남는 매운맛, 잠깐 괜찮아지다 다시 아려오는 끝맛까지, 몇 숟갈 먹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군대 화생방의 CS탄도 이렇게 따끔하진 않았는데, 그 고통을 사회에서 다시 느낄 줄이야.


세상에 태어난 수많은 매운 음식들은 금방 생기고 금방 사라졌지만, 불닭볶음면, 엽기떡볶이, 마라탕처럼 일부 음식은 주류 식문화가 되어 나를 괴롭힌다. 맵고, 맵고, 또 매운 음식이 나타나는 주기적인 유행은 언제쯤 사그라들까?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 고통이다.


PBSE2288.jpg 열다섯 번째 끼니 - 낙지볶음, 팟타이, 부대찌개, 마라탕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