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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Apr 27. 2022

여전히 미남이시네요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노령묘 돌보기

엄마 (68년생)

/ 우리 미남이 정말 잘생겼죠?


"냐~옹"


새벽 3시 30분에서 4시 30분 사이 고양이 알람. 아~ 더 자고 싶은데.


"냐아옹~~냐옹~~와아오옹~~~"  


더 이상 버티면 안 된다. 버텼다간 잠이 깬 남편이 엄한 목소리로 조용히 시킬 테니까.


"그래 미남아~ 엄마 나갈게~"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반쯤 뜬 눈으로 방문을 열면 고양이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미남이. 우리 집 어르신.

방 구경 좀 하겠다며 머리를 들이미는 고양이를 달래 거실로 간다. 내가 소파에 누우면 냥이는 내 무릎 밑으로 올라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웅크린다. 다리를 통해 미남이의 체온이 전해지고 나지막한 숨결이 느껴지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리고 서글퍼진다. 미남이가 벌써 열세 살이란 사실에.


미남이는 얌전하고 무던한 고양이었다. 사료나 화장실 모래를 바꿔도 별말 없이 변화를 받아들였고, 중성화 수술을 했을 때나 여름휴가 때 병원에 맡겨졌을 때에도 눈에 띄는 투정이 없었다. 그뿐인가. 작고 섬세한 장식품이 많은 우리 집안을 오가면서도 물건을 깨거나 망가뜨린 일이 없었고, 다 큰 성묘를 동생으로 맞아들였을 때도 비교적 평화롭게 합사를 치렀다. 그러던 미남이가 요즘 어리광이 늘었다.

이른 새벽부터 나를 깨우는가 하면, 이유를 알 수 없이 울어대는 일이 많아졌다. 무심한 기색을 보이면 빤히 쳐다보며 소리 없이 말한다. '엄마, 왜 날 안 봐?'  아니, 어쩌면 내가 넘겨짚는 건지 모른다. 미남이가 나이 들고 병들었다는 거 때문에 모든 걸 확대해석하는지도.


어릴 때부터 자주 토하던 미남이는 신장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지냈는데 작년부터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신장이 많이 망가져서 강제급수를 시키고 진저리 치는 약도 먹여야 했다. 그나마 작년엔 사정이 괜찮았다. 얼마 전 검진을 하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주삿바늘을 찔러 몸에 직접 물을 넣어주는 방법을 고려해보란 권유를 들었다. 겁이 많은 나는 주삿바늘 생각에 속이 울렁댔지만 딸은 좀 달랐다. 그렇게라도 미남이를 지키는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뭐야 그렇게 의젓할 건 없잖아 엄마 무안하게스리.


미남이가 우리 집에 온 건 일하는 엄마 밑에서 크는 아이를 위해서였다. 빈 집에 혼자 들어오는 딸을 걱정하다가 이런저런 인연이 닿아 데려왔는데, 미남이는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해줬다. 딸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건 물론 나의 불안과 고단함까지 달래줬으니까.


어려선 사랑스러움으로 큰 몫을 해내더니 이젠 걱정과 염려를 안기면서도 자기 몫을 해낸다. 나이 든 생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걸 일깨우고 단단한 마음가짐과 인내를 알려준다. 한결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긴 이별을 각오시키기도 한다. 팔순을 넘긴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작게나마 얼마나 소중한 예습인지.


어려서는 딸의 성장을 지켜주더니 나이 들어서는 나를 한 뼘 더 자라게 해주는 미남이.

병과 죽음도 생생한 생명활동의 하나란 걸 깨닫게 해주는 고양이 선생님.

고마워요 미남이 나를 돌봐줘서.

 





딸 (97년생)

/ LONG LIVE THE CAT


2009년. 외계 생명체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고 어느 날 나의 품에 와 안겼다. 초면에 뻘쭘하지도 않은지 가만 안겨 나를 쳐다본다. 오른쪽 눈을 깜빡였다! 플러팅을 날리다니. 난 어릴 때부터 미남에 약했다. 잘생긴 얼굴이 날 보고 윙크하다니. 같이 살아야겠다.


그는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말하는 것도 쓰는 것도 다르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애 좀 먹었다.

그래도 부대끼며 살다 보니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왜옹 거리며 부엌을 돌면 간식을 달라는 뜻이고 머리카락을 톡톡 건드리면 모발관리해주겠다는 뜻이다.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고 소파를 두드리면 내 옆으로 와 티비도 보고 잠도 잔다. 말없이 대화하는 법도 배웠다.


같이 살만해졌더니 슬슬 떠나야 한단다. 외계에서 왔으니 본인 별로 돌아갈 모양이다. 배신감과 서운함에 눈물이 퐁퐁 났다. 그래도 산 정이 있으니 하는 거 봐서 좀 더 곁에 지내준다고 했다.


정체불명의 맛도 없는 액체가 입으로 들어오니 거부하는 게 당연했다. 작은 세계에 의지할 건 몇 안 되는 인간뿐인데 그들이 괴롭히니 얼마나 싫을까.

말이 안 통하던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 거 같았다. 그때는 내가 사춘기를 지나느라 미남이가 많이 봐줬으니 이젠 내가 잘해줘야지. 마음 굳게 먹고 꾸역꾸역 투여하면서도 내 욕심인가 싶었다. 정말 미남이를 위한 게 뭘까. 내가 너무 뭘 모를 때 만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 고생을 미남이가 또 겪는 거 같다. 그게 제일 미안하다.


그렇지만 좀만 더 이기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약을 먹이면 배신감에 뛰쳐나가도 삼십 분 뒤 고롱고롱 옆에서 자는 걸 보면 같은 마음인 거지. 아직도 머리를 비비고, 빤히 눈을 맞춰주고, 말 걸어주는 거 보면, 나랑 살만한 거지. 말없이 대화하는 법을 이렇게 자의적으로 쓴다. 내가 잘하기로 했는데 봐주고 있는 건 여전히 미남이다.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게 와닿지 않는다. 미남이가 없는 삶이 상상이 안된다.

몸은 내 1/10만 하면서 받은 거보다 준 게 많아서 그런가 보다.

미남이가 나에게 준 건 울음소리, 꾹꾹이, 머리 박치기, 뜨끈한 뱃살, 넓은 등짝, 보드라운 털, 위로, 애정, 믿음 그 외 무한한 것들.

스르르 채워주는게 많은 존재가 사라지는 건 상상만으로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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