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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May 26. 2022

무엇이 무엇이 똑같은가
피는 못 속인다는데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유전(遺傳) 

엄마 (68년생)

소제목 때문에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을 떠올렸다면 죄송하게 됐네요


내 또래 사람이면 어린 시절 이런 상상을 한 번쯤 해보지 않았는지. 

이 세상 어디엔가 나를 진짜로 낳아준 친부모님이 따로 살고 있다. 그들은 무지무지 부자인데 말 못 할 사정 때문에 지금 나의 부모님께 날 잠시 맡긴 거다. 근데 불의의 사고로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막대한 유산 상속을 위해 후견인이 찾아올지 모른다. 결국 난 길러주신 부모님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덩치 큰 리무진을 타고 저택을 향해 떠난다. 


이 얼토당토 안 한 상상은 그 시절 사랑받던  <파도여 안녕>이나 <유리의 성>이란 만화책  탓이 큰 거 같다. 작품에 등장한  출생의 비밀은 당대 어린이들 가슴에 ‘뜻밖의 유산 상속’이란 욕망에 불을 지핀 것. 근데 내가 아무리 웅대한 상상을 펼치려 해도 결국 다 관둔 건, 난, 닮아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빠를. 


언니와 남동생이 훤칠한 엄마의 키를 닮은 반면 나는 아담한 아빠의 키를 닮았고, 손과 발은 틀에서 찍어낸 듯 똑같고, 얼굴형은 여성버전 남성버전의 차이 정도다. 그나마 코는 엄마의 유전자가 결사항전으로 지켜낸 덕인지 아빠의 납작한 콧대를 겨우 피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엄마의 은혜는 실로 가없다.


이토록 강력한 아빠의 유전형질을 뿜뿜하며 살아온 나이건만, 요즘은 내 사진 속에서 얼핏얼핏 엄마를 만난다. 찬찬히 뜯어보면 분명 아빠 이건만 그 위로 엄마가 묘하게  겹쳐 보이는 거다.  

무심코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 실루엣이나 고양이와 나란히 소파에 누워 잠든 내 사진에서 엄마가 발견된다. 아무래도 키워드는 ‘무방비 상태’인 것 같다. 거울 앞에서 눈코입을 장악하고 단속할 때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데, 조금이라도 넋을 놓고 있으면 엄마가 쑤욱 나오니 말이다. 엄마의 무의식을 닮아 가고 있는 걸까. 


전화받는 목소리가 상냥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으셨던 엄마. 

외할머니께 잔소리 들었던 게 싫어서 우리 남매를 잔소리 없이 키우려 애썼던 엄마. 

개성 강한 아빠와 살면서 당신의 주장을 꿀꺽 삼키고 산 엄마. 

그런 엄마가 긴장을 풀고 툭- 넋을 놓고 있던 순간엔 대체로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쩌면 그 답은 엄마 자신도 모르실 거 같다. 의식하지 않았던 순간이니까. 


무방비 일 때 맥없이 떨어져 있던 엄마 팔의 느낌이나, 살짝 굳은 채 벌어진 엄마의 입을 생각하면 왠지 안쓰럽다. 엄마도 때론 상냥함 같은 건 잊고 싶었구나. 엄마도 어떨 땐 투정을 부리거나 그냥 다 못 본 척하고 싶었구나. 엄마''인 이유는 나'' 그렇기 때문이다. 


사는 게 지치거나 버거울 때면 한 걸음씩 더 엄마를 닮아간다. 거기에 엄마의 덤덤함도 닮아야 할 텐데 그건 좀 어려운 거 같으니 이 일을 어째야 할지. 




딸 (97년생)

/지성과 부티를 타고났으면 좋았을텐데


2017년 일본 유전학회는 오랫동안 사용했던 우성과 열성이라는 용어를 현성(顯性)과 잠성(潛性)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해당 용어가 오해나 편견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오해와 편견은 나 역시 한때 가졌던 것으로 우성인자는 우등하고 열성인자는 열등한 특징인 줄 알았다. 오해하지 말자. 우생학을 믿었던 건 아니다. 열네 살 사춘기 청소년이 자신의 단점이 열성인자들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대표적 예시로 내 발의 평평한 바닥은 아빠를 닮았고 높은 등은 엄마를 닮았다. 아빠는 낮은 발등을 가졌고 엄마는 아치형 바닥을 가졌는데 그중 골라 가진 게 평발과 높은 발등이라니? 부모님을 원망했던 건 아니다. 1997년에 <가타카>가 나오긴 했어도 영화처럼 유전자를 선택해 물려줄 순 없었으니깐.


단점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고는 하지만 좋은 것만 쏙쏙 피해 물려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피부. 엄마는 피부가 두껍고 트러블도 잘 안나는 반면 아빠는 예민한 피부를 가졌다. 나는 그중 예민한 피부를 타고나 아토피와 모공각화증이 있으며 접촉성 피부염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놈의 피부는 당최 장점이라고는 없어서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의 속을 썩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아토피에 좋다는 건 백방으로 찾아 먹이고 발라주셨으며 식단과 이불도 바꾸셨다. 말하진 않으셨지만 남모를 죄책감도 느끼셨던 거 같다. 나는 간지럼과 따가움에 시달렸고 아토피가 난 팔, 다리, 눈가 등이 부끄러워 자존감이 떨어지는 문제를 겪기도 했다. 지금은 다 털어냈지만 눈은 짝짝이로 남아있다. 이게 가끔 신경 쓰일 땐 강동원의 짝눈을 찾아본다... 짝눈이란 좋은 거구나!


예민한 피부 덕에 생긴 장점이 있다면 내가 피부를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생긴 습관이 남아 세수나 샤워를 하고 나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보습제를 바른다. 아무리 만취하고 피곤에 곯아떨어져도 새벽 세시쯤이면 늘 얼굴이 답답해서 잠에서 깨 화장을 지우고 잔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너는 피부가 좋은데 타고난 거야?"라는 얘기를 양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들었다.


나의 단점. 50%의 확률 (문과입니다) 로 받았는데 안 좋은 거. 이 예민한 피부라는 게 정말 단점인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가지고 태어난 무언가가 표면적으로는 안 좋아 보여도, 그로 인해 어떤 습관과 과정이 발생해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이 역시 타고났다는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노력을 다른데서 공치사하거나 자기극복이라는 교훈을 얘기하려는게 아니다. 다만 마이너스가 있다면 그걸 상쇄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인간이 타고난 특징이니, 유전은 아무런 죄도 단점도 없고 누구도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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