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남편 혹은 아빠
/ 나랑 사는 게 인생 최대의 모험이자 위기였을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움.
“난 태어나서 소바 처음 먹어봐.”
대학가 근처 그렇고 그런 분식집이었다. 내 앞에 앉은 그 남자가 이 말을 했을 때, 조금 놀랐다. 그는 날렵한 몸에 금테 안경을 쓴, 누가 봐도 깔끔한 도시 사람 같아 보이는 스물두 살의 학생이었는데 소바를 처음 먹어본다니. 잠시 후 채반에 얹혀진 국수와 일본식 간장 소스 등등이 나왔고 그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자 그는 배운 대로 한 젓가락 듬뿍 먹더니, 갈아 나온 무처럼 하얗고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맛있다!”
나와 데이트하면서 일본식 메밀국수를 처음 먹어본다는 그의 고백은 하나의 상징 같다. 그에 관해 설명해주는 상징.
무엇보다 그에겐 허세가 없다. 적어도 내 앞에선 확실히 그랬다. 연애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여자 앞에서 남자는 뭐든 다 아는 척, 다 해본 척하기 쉬운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안 해본 건 안 해봤다고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책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김승옥에 열광해 있을 때라 열을 올렸지만 그는 김승옥을 안 읽었다는 거다. 이럴 수가. 충격을 받았지만 애써 감췄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니 대놓고 구박할 순 없었으니까. 그 일이 있고 한참이 지난 다음, 이런저런 잡담 끝에 그가 김승옥을 읽었다는 걸 알게 됐다. “너 안 읽었다며?” 내가 물으니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때 네가 말해서 읽었어.”
그는 김승옥을 읽지 않았던걸 감추지 않았을뿐더러, 읽었다고 나대지도 않았다. 반면 나는 읽었다고 우쭐댔을 뿐 아니라, 그가 말했던 책은 기억도 못한다. 그는 가끔 나를 이런 식으로 부끄럽게 만들곤 한다.
두 번째는 그 사람과 나는 자라온 모습이 참 많이 다르다는 거. 내가 어릴 때 부모님 하시던 일은 뜻하지 않게 부침이 컸고 그때마다 엄마는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그러던 가운데 곤두박질치던 형편을 벗어나 조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아빠는 우리 가족을 근사한 레스토랑에 데리고 간 적 있다. 그날 아빠는 양식은 포크 나이프 등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면서 이런저런 테이블 예법을 알려주셨다. 그 후에 엄마가 옆집 아줌마한테 ‘지금 우리 형편에 그런 레스토랑이 말이 돼?’ 라며 한숨 쉬는 걸 엿들었지만 말이다.
반면 그는 나와 많이 달랐다. 밖에 나가서 괜히 돈 쓸 거 뭐 있느냐며 부지런히 해먹이던 집. 특별한 별미보다는 푸짐한 집밥이 최고라는 분위기 덕에 그는 따뜻한 아침을 거르는 법이 없는 대신 ‘외식’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먹어본 게 별로 없었다.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맞힐 수 있다고 했던가. 나와 그 사람을 놓고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끝으로 하나 더.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먹자는 나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주저 없이 먹었던 그 사람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대한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모험의 순간에 함께 할 파트너로 의심 없이 나에게 손을 내미는 거다.
내가 특별히 믿음직한 파트너냐고? 난 오히려 작은 돌부리에도 스텝이 꼬이고 불안해할 때가 많다.
부부는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부부라서 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수없이 본다.
회사에서 고민이 생겼을 때, 아이디어를 자극받고 싶을 때,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싶을 때, 친구들이나 직장동료가 사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질 때, 어떻게 입어야 젊어 보이는지 궁금할 때, 연로하신 부모님이 걱정될 때 그는 나를 부른다. “네 생각엔 어때?”
물어주는 게 고맙고, 대답 찾을 기회를 줘서 고맙다.
아마 이번 주말에도 그는 또다시 나를 부를 거 같다. “여름엔 메밀국수 아냐?”
그놈의 메밀국수 타령. 내가 한번 알려준 건 평생 가는 저 남자.
그가 바로 우리 집 유일한 남자, 내 남편이다.
/ 효도는 돈으로 해야만
스무 살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몰래 어른들을 따라 하던 때는 끝났다. 사람들과 떠들고 마시고 밤늦게까지 놀다 보면 하루는 금방 간다. 숙취와 피곤을 달고 눈을 뜬 아침, 시야가 흐릿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날 밤 콘택트렌즈를 끼고 잔 건 아니었다. 머리맡에서 집어 든 안경이 더러워서였다.
안경을 처음 썼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아빠는 매일 내 안경을 닦아줬다. 전날 회식을 했건 무슨 일이 있었건 아침엔 깨끗이 닦인 안경이 가지런히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저분한 안경을 끼고 나서야 10년의 정성을 체감했다.
성실함은 희귀한 스펙이다. 시간으로만 증명 가능한데, 시간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데다 증명의 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자기소개서에 근면을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애정의 분야에서 성실은 멸종위기종이다. 대가도 목적도 없는 성실한 사랑은 종교에 가까워 보인다. 몇 년 전 평일 아침 7시에 출근하는 카페 알바를 시작했을 때, 아빠는 본인 출근시간을 40분 당겨 반년 동안 매일 나를 데려다주었다. 내 키가 클수록, 나이가 들수록 아빠가 점점 더 큰 사람으로 보인다.
아빠가 꾸준한 사람이어서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좋은 사람인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아빠는 나랑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이다. 생활습관부터 사고방식까지. 나를 키운 게 아빠가 맞나 싶다. 간극은 내가 대학에 가고 머리가 커지면서 더 커졌다. 지금은 다시 좁혀가는 중인데 여기에 8할은 아빠의 노력이다.
신념의 견고함은 나이에 비례한다. 아빠는 나의 두배를 살았지만 내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걸 이해해보려 한다. 50여 년 역사가 딸내미가 버럭 한다고 말랑해진다. 설령 이해에 실패해도 함부로 반대하지 않는다. 권위로 나를 누르지도 않는다. 대신 이해할 수 없음을 솔직하게 말해준다. 이건 아주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은영 선생님이 핫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러니 아빠와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빠가 나는 나답게 자라게끔 키웠으니깐. 물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이룩한 일이다. 그 덕에 나는 내 생각을 말하거나 틀린 걸 인정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딸의 모든 면면에는 아빠의 애정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
아빠는 직장을 다니면서 미라클 모닝도 하고 퇴근 후 운동도 한다. 친구가 아버님의 반만 닮아도 넌 성공할 거라고 했는데 반은커녕 1/10도 어려워서 포기했다. 확실히 낳고 키웠다고 닮는 건 아닌다. 포기는 했지만 나의 지향점엔 언제나 아빠가 있을 것이다. 성실해서가 아니라 아빠가 정말 좋은 아빠고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