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구들은 기상과 취침, 활동시간이 모두 다르다. 성인 된 아이들은 각자의 생활패턴과 계획에 따라 자신의 기상과 취침시간을 알아서 조율해 가며 살고 있다. 둘째 아이는 스케줄이 있으면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오전 10~11시 사이에 일어나기도 한다. 저녁시간에 강의를 듣거나 공부할 일이 있으면 아침이 올 때까지도 잠을 자지 않는다. 막내는 아르바이트를 밤에 하는지라 낮에는 주로 잠을 잔다.
나는 평균 밤 9시경이면 잠이 들었다가 4시 반이나 5시경에 일어난다.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맑고 좋으며, 어떤 것에도 방해 없이 긴 아침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생활 패턴을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법적 성인의 나이가 되었고 대학생이니, 내가 잔소리로 아이들을 훈계한다고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들 스스로 인생을 주도해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아침형의 사람들이라 9시 이후면 잠잘 궁리를 하고, 아이들은 보통 저녁 늦게까지 활동을 한다. 그러기에 서로 생활이 반대가 되는 일이 많다. 한 집안에서 낮과 밤 활동하는 시간대가 다르면 불편사항이 조금 있다. 식사나 소음의 문제가 그것이다. 하나 식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집은 남편만 빼고는 모두들 각자가 다 알아서 식사를 챙겨 먹는지라 먹거리 챙기는 일이 내게는 부담이 없다. 아이들도 먹는 일로 엄마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나와 남편은 움직이는 시간대가 같으니 남편만 불만 없이 챙겨주면 되는 일이다.
소음문제도 아이들이나 나에게는 큰 문젯거리는 아니다. 아이들도 낮에 밖에서 달그락대는 소리에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고, 나도 아이들이 밤에 왔다 갔다 하거나 딸깍거리는 소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밤에 깊이 잠을 이루는 편이라 나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달리 잠결이 예민하여 한동안 힘들어했다. 아이들도 밤에는 나름 조심하여 행동하지만 자잘한 소음을 다 소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로 대화를 종종 해 보았으나 만족할만한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는 시간을 조금 당기거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자!'라고 결론을 내는 게 고작이다.
나는 아이들이 이미 성인이므로 아침형으로 살든 저녁형으로 살든 자신의 인생을 엎치락뒤치락하며 잘 경영해나가기를 바란다. 직장에 들어가고 사회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생활을 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가 인생 망한다. 사람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도록 만물을 설계한 신의 섭리에 맞춰 사는 게 건강에 가장 좋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라고 내 기본 신념이나 주장을 주입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 몇 차례 진지하게 얘기를 해 보았으나 그런 말이 아직 인생을 많이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신념을 강조하는 억지소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저녁 활동을 신경질적으로 잔소리를 하거나 생활패턴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다만 남편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남편에게 무시하고 그냥 자라고 한다 해서 원래 예민한 부분이 바뀌어지지는 않을 일이니 난처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서로가 자신들의 입장을 종이 뒤집듯 쉽사리 바꾸기는 힘든 일이다. 그나마 남편은 외부 근무가 많아서 주말 혹은 외근이 없는 날에만 집에서 자니 다행인 셈이다.
남편의 입장과 아이들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는 나로서는 양쪽에 대고 서로에게 양보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잠에 예민한 남편도 그러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닐 거고, 아이들도 부모의 상황에 맞게 자신들의 생활을 맞춘다는 건 어려운 일일 거다. 더군다나 우리 부부는 남들보다 두세 시간을 일찍 자는 사람들이니 강제적으로 아이들에게 일찍 자라고 억지를 쓸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아이들이 그러든 저러든 내 삶의 패턴을 충실히 따르며 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