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서울 한강공원 — 떠나기 전, 가장 익숙한 풍경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by 하늘바라기

그날 나는 한강에서 울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유를 몰랐다.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상처 입힌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반포대교 아래 서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손으로 급히 닦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저녁 7시. 퇴근 시간. 한강공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자전거 타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 치킨을 먹는 무리,

소주를 마시는 커플, 혼자 음악을 듣는 청년. 모두가 제 삶을 살고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나만 멈춰 있었다.


강물이 흘렀다.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한강은 언제나 이렇게 흘렀다.

내가 출근할 때도, 야근할 때도, 주말에 집에서 잠만 잘 때도. 한강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흐르지 못했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바람처럼 가볍게 흐르지 못했다.

나는 막혀 있었다. 서울에 10년째 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시작해 투룸으로 옮겼다. 월급은 조금씩 올랐다. 직급도 올라갔다.

이력서에 쓸 것들이 하나둘 늘었다. 겉으로 보면 괜찮은 삶이었다.

실패하지 않은 삶. 뒤처지지 않은 삶.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혔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답답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면 질식할 것 같았다.

회의 시간에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게 진짜 내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텅 빈 기분이었다. 하루를 살았는데 산 것 같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어때?" 누가 물으면 "괜찮아, 바쁘게 잘 지내"라고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괜찮았고, 바빴고, 잘 지냈다. 그런데 진실도 아니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바쁜 게 좋지 않았다. 잘 지내는 게 뭔지 몰랐다.

그냥 살았다. 흘러가듯. 아니, 흘러가지도 못하고 그저 끌려가듯.

월요일이 오면 출근하고, 금요일이 오면 한숨 쉬고, 주말이 오면 쉬었다가, 다시 월요일이 왔다.

반복.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한강공원에 온 건 우연이었다. 그날 회사에서 일이 꼬였다.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엉망이었다. 집에 가기 싫었다. 혼자 있기 싫었다.

그렇다고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걷고 싶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한강으로 향했다. 이 길을 걸은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안 났다.

서울에 살면서 한강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나?

늘 지나치기만 했다. 차로, 지하철로, 버스로. 한강은 늘 창밖에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배경. 그뿐이었다. 강변을 걸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구름이 천천히 움직였다. 물에 빛이 반사됐다.

반짝거렸다.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이상하게 슬펐다.


'왜 이제야 보는 걸까?'


매일 이 도시에 살았다. 매일 이 강 근처를 지났다. 그런데 보지 못했다.

볼 시간이 없었다. 아니, 시간은 있었다. 볼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늘 다음을 생각했다.

다음 약속, 다음 미팅, 다음 마감. 지금은 그저 지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현재는 미래로 가기 위한 통로였다. 벤치에 앉았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웃는 얼굴, 지친 얼굴, 무표정한 얼굴.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었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봤다. 업무 메시지였다.

"내일 아침까지 검토 부탁드립니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9시간도 안 남았다.

답장을 해야 했다. '네, 확인했습니다'라고 쳐야 했다. 손가락이 움직이려 했다. 그런데 멈췄다.


'왜?'


갑자기 화가 났다. 누구에게? 메시지 보낸 사람에게? 아니었다.

나한테. 항상 '네'라고 대답하는 나한테. 언제나 확인하는 나한테.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나한테.

나를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나한테.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답장하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불안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연락해야 하는데.' '문제 생기면 어떡하지.'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그런데 동시에 이상한 쾌감이 들었다. 작은 반항. 작은 거부.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때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몰랐다. 화나서? 슬퍼서? 억울해서? 다 맞는 것 같았고, 다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눈물이 났다. 참았던 게 터진 것 같았다. 쌓였던 게 무너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나 자신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람들이 볼까 봐.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았다.

모두 제 삶에 바빴다. 우는 사람 하나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게 서울이었다.

외로운 도시. 모두가 함께 있지만 모두가 혼자인 도시.


눈물을 닦고 강물을 봤다. 물은 여전히 흘렀다.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나는 생각했다. '나도 흘러야 하는데.' 막혀 있으면 안 되는데.

고여 있으면 썩는데. 움직여야 하는데.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노트. 첫 페이지만 쓰고 방치해 뒀던. 펜을 들고 적었다.

"나를 찾으러 간다."

단 한 줄. 그런데 쓰고 나니 손이 떨렸다. 이 한 줄이 무겁게 느껴졌다. 선언 같았다.

다짐 같았다. 돌아갈 수 없는 선을 긋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멀리? 해외? 아니었다. 멀리 갈 힘이 없었다.

외국어로 말하고, 낯선 음식을 먹고,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것. 그럴 에너지가 없었다.

그냥 가까운 곳. 낯설지 않은 곳. 한국어가 통하는 곳. 그런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한국.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 그런데 제대로 본 적 없는 나라.

서울 밖을 얼마나 가봤나? 여행이라고 해봤자 유명한 관광지 몇 곳.

사진 찍고, SNS에 올리고, 체크리스트 지우고. 그게 다였다. 진짜로 여행한 적이 있었나?

진짜로 느낀 적이 있었나?

이번엔 다르게 하고 싶었다. 사진 찍으러 가는 게 아니라 나를 찾으러 가는 것.

관광하러 가는 게 아니라 마주하러 가는 것. 도망가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 나 자신에게.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힘을 주고 섰다. 결정했다. 내일 회사에 휴가를 내자.

2주. 승인될지 모르겠다. 팀장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동료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그런데 상관없다. 이번만큼은 나를 선택하자.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나를 먼저 생각하자.


한강을 떠나며 뒤를 돌아봤다. 강은 여전히 흘렀다. 사람들은 여전히 걸었다.

도시는 여전히 빛났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나였다. 조금. 아주 조금.

그런데 그 조금이 시작이었다.

집으로 걸어갔다. 휴대폰은 여전히 주머니에 있었다. 울리지 않았다.

아니, 울렸는지도 모르겠다.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상하게 괜찮았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었다. 걷고 있었다. 숨 쉬고 있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휴가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다.

사유란에 뭐라고 쓰지? '개인 사정'? '휴식'? 아니면 솔직하게 '나를 찾으러 갑니다'라고?

웃음이 났다. 그런 걸 쓸 수는 없었다.


노트북을 켰다. 신청서를 작성했다.

사유: 개인 휴양. 기간: 2주. 제출 버튼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정말 할까?' '지금?' '이 타이밍에?'

마우스를 움직였다. 클릭했다. 제출됐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서웠다. 동시에 흥분됐다. 뭔가 시작된 것 같았다.

돌이킬 수 없는 뭔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화가 시작됐다.

노트북을 덮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일부터 달라질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극적인 변화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냥 조금씩. 천천히. 한 걸음씩.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떠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 나를 찾는 여행. 한강에서 눈물 흘리던 그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