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외에는 알 수 없는 오프 더 레코드를 통한 나만의 사회복지 공부
글을 쓰기 앞서 내가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난 절대로 술을 권장하거나 회식에 대한 당위성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님을 밝힌다. 다만 내가 경험한 상황과 시기 그리고 함께한 분들의 기호로 인해서 회식과 술자리를 통해서 나만의 사회복지 공부를 한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도대체 어쩌다가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게 된 거야?" 최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청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만난 저녁 식사자리에서 나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게... 어쩌다 보니 지금 내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네..."라고 나는 대답했다. 친구는 내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어쩌다 보니 경영학과를 나와 장사를 하고 싶어 했고, 마케팅 공부를 하면서 온라인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던 내가 장애인 당사자 단체에 벌써 만 3년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전공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신입직원 선생님들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없는 내가 장애인 당사자 단체 종사자로서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그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런 어이없는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전공 공부를 하면서 이제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사회복지현장실습을 이수하여 졸업을 하게 되면 나 역시도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이 나온다. 하지만 일주일에 3번,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던 내가 사회복지에 대해서 뭐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 단체 종사자로 3년을 일했다고 하지만, 실제 내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한 업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조직지원부서에서 조직관리, 회원관리, 법인 행정 업무를 하였고, 기획행정부에서는 회계업무, 후원금 업무, 장애인 고용장려금 업무와 같은 훨씬 더 디테일한 행정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지난 3년 동안 내가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 있으면서 우리 회원분들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해보거나, 장애인 당사자분의 민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후원받은 물품을 손수 전달해 본적이 전혀 없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오히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을 했다기보다 그냥 일반 회사에 업무를 하거나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회원단체나 민간단체의 종사자로 일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회복지 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나만의 태도와 자세는 늘 진지하다. 그리고 이 마음의 씨앗이 되며 뿌리가 되었던 순간들을 떠 올려 보면 난 대부분 함께 일했던 우리 협회 분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사회복지 이야기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정말 질릴 정도로 사회복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밤을 새우면서까지 쉬지 않고 사회복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만 허락한다면 난 정말 그렇게 날을 지새우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린 대부분 9시에 출근하여 자신의 업무를 하면서 6시에 퇴근한다. 그리고 마음 맞는 몇몇 사람 혹은 명분을 내세운 회식과 같은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곤 한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얘기한다. 19년 2월 입사를 하여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19년 말까지 정말 우리 협회에서 열리는 회식과 저녁 모임에는 정말 빠지지 않고 다 가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업무 시간에 하기 어렵거나 업무 이외에 질문할 수 있는 '오프 더 레코드'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자리가 바로 이 회식 자리와 저녁 모임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의 술이 함께 더 해준다면, 보다 진솔하고 생생한 날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지원부에서 법인 서류 업무를 하던 중에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위한 단말기 신청에 대한 승인 요청 건이 중앙회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럼 난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법인 서류를 승인하기 위해서 해당 내용을 검색하고 업무에 필요한 부분만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6시 업무를 마친 뒤, 나는 회식을 하거나 저녁 모임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장애인활동지원사업'에 대한 이슈와 주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그런 질문과 대답 속의 오고 가면서 술 한잔도 함께 오고 가며 사회복지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난 주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은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왜 생겨난 거예요?"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요양보호사랑 뭐가 다른 거예요?" "장애인활동지원법 안에 만 65세가 넘어가면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의 범위가 대폭 줄어드는 이유가 뭐예요?" 등과 같은 인터넷에서 먼저 내가 찾은 질문에 대해서 장애인복지관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현장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업무 시간에는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위한 단말기 승인 요청 건에 대해서만 빠르게 확인하고 해당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만 내 업무라고 생각하고 그쳤다면, 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업에 대한 단말기 승인 건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말기를 승인해 주었을 때, 통신사로부터 해당 단말기를 구입하여서 장애인활동지원사와 장애인당사자간의 어떤 형태와 시스템 안에서 해당 서비스를 제공이 되는가? 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장애인활동지원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장애인활동지원사업과 같은 바우처 사업이 앞으로 사회복지 서비스에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며 이것이 장애인개인예산제도와 함께 정책과 제도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만 65세 이상이 되는 시점부터 장애인복지법이 아닌 노인복지법에 의해서 장애인에서 노인으로 변화되는 사회복지 정책과 제도의 허점 또한 알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9시부터 6시까지 내 담당 업무만 하고, 그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면 지금 내가 이러한 궁금증과 문제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신입 사회복지사분들이 이 글을 읽고 나서 '아 회식자리에 가서 술 한잔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정말 업무 이외에도 내가 이 일을 재밌어하는가? 좋아하는가? 관심이 있는가? 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내 삶의 전반적으로 이루어져 있나 하는 생각으로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럴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사회복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는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이 일이 싫어지거나 재미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분명히 오프 더 레코드라는 자리가 주는 장점은 있다고 본다. 그 자리와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구성원이다. 평소 사회복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고,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파악해 두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분들과 함께 술을 기울이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역량을 높일 수도 있고, 관계 안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술은 자제하면서 되도록 다음날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실수를 하면 사실 그 이후의 만남이 성사되기 쉽지 않다)
여전히 난 업무 시간 이외 사람들과 함께 하면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재밌고 즐겁다. 평생을 해온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만 3년 정도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비전과 전망성은 분명 높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난 이 마음과 자세를 놓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사회복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브런치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은 구독자 40명에 내 글을 많이 읽어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혹시 이 글을 읽거나 함께 사회복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우리의 기나긴 이야기가 우리 지역을, 우리 사회를, 어쩌면 대한민국을 아주 조금이나마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과 설렘만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 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