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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Oct 13. 2024

내 마음의 산티아고 11

꽃 중년, 산티아고 카미노 300Km 14일간의 일기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빵과 소시지로 점심을 해결하다.


2월 18일 화요일. 카미노 제8일. 

포이오고개에서 칼보르까지 27.5Km


  새벽 5시경 잠에서 깨어난다. 카톡으로 식구들과 대화한다. 이스라엘 국경 근처에서 한국인이 탄 버스를 향한 폭탄테러로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구역장님의 격려 카톡도 확인한다. 친구 희영의 격려 카톡도 확인한다. 고맙다. 

  알베르게를 나오니 한 마리의 개가 우리를 환송한다. 


  어제 우리가 넘은 포이오고개(Alto do Poiov 1,335 m)와 또 오늘 우리가 넘어갈 고개는 가시거리가 100m도 안 되는 짙은 눈안개로 덮여 있다.

  눈이 더 내릴 것에 대비하여 우비와 스패츠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출발한다. 북과 남의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우리는 6.6Km가 짧은 북쪽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좀 더 가파르다는 안내 책자의 설명을 확인한다. 차도를 따라 걷는데 제설차가 도로를 말끔히 치워 놓았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는 포이오고개에서 폰프리아 Fonfria를 거쳐 트라이카스텔라 Tricastela (고도 675m)를 향해 내려간다. 서로 자기의 짐을 짊어지고. 간간이 지나가는 차는 우리를 위해 길을 비켜간다. 고맙다.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스페인은 축복받은 땅이다. 어제도 길에 떨어진 밤과 호두를 많이 주워 와서 졸루카와 리포에게 까 주었는데, 지금도 길바닥에 밤이 지천이다. 밤나무 잎은 두꺼운 층을 이루어 썩어 있고, 썩은 밤, 밤송이, 설치류에 의해 살짝 먹힌 밤들을 밟으며 지나간다. 이렇듯 부엽토가 두텁고, 눈비에 부엽토가 떠 흘러내리니 이곳 땅이 기름지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당과 눈꽃 만발한 설원을 지나간다. 산을 내려올수록 날씨는 좋아져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Maison Palulana에서 차를 마신다. 다시 출발하여 Tricastela에 도착한다. 우리의 점심식사 예정지였다. 그러나 너무 작은 도시라서 열려있는 바가 없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슈퍼마켓에서 스낵류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리포와 졸루카는 바게트 빵에 치즈와 햄을 채운 Bocadille를, 나는 달콤한 빵과 요거트, 그리고 소시지로 점심을 대신한다. 슈퍼마켓 옆의 버스정류소 의자에 앉아서.

   카미노 중 산악지역을 통과할 때는 슈퍼를 만나기도 쉽지 않아 약간의 간식과 비상식량을 준비한다. 깐 호두, 슬라이스치즈, 초콜릿 등을 사서 가방에 넣는다. 

   2시 다시 출발이다. 산실 San Xil을 지나 우리나라의 산길과 비슷한 길을 걷는다. 길바닥이나 길옆의 돌담이나 길가의 집이나 모두 정교하게 디자인된 완벽한 조합인 듯 아름다운 마을이다. 수 십 년은 되어 보이는 갖가지 모습의 나무들, 소박한 기구뿐이지만 정겹고 아름다운 놀이터를 지난다. 내가 걷는 카미노 330Km(전체는 800Km 이상임) 발걸음 닫는 곳마다 명상을 위한 배려가 있는 듯하다. 

  농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을에서 풍기는 소똥냄새가 푸근하게 느껴진다. 그들과 마주치며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지나간다. 

  3시 30분 리오카보봉 Alto do Riocabo에 도착. 30분 휴식. 재빨리 가방에서 젖은 양말을 꺼내어 배낭 뒤에 매단다. 자연 건조를 위하여.

  다시 걷는다. 평원을 좌우에 두고. 풀을 뜯는 소들이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다. 서로 눈이 마주친다. 내가 지나는 길을 바라본다. 나를 따라가고 싶은 듯. 끝이 없을 것 같은 길,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이 길. 이제야 졸루카 입에서 산티아고 입성 날짜가 나온다. 몇 차례 내가 물었을 때는 알 수 없다고만 하더니, 이제는 거의 도착 날짜가 그려지나 보다. 4, 5일 후면 산티아고 입성이란다. 

  Saria 표지가 나타났다. 멀리 사리아 마을이 보인다. 벌판에 무가 열무김치 담아도 될 만큼 자라 있다.

 하루에 겨울과 봄을 동시에 지난다. 차도로 자그마한 버스가 지나간다. 안을 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타고 있다. 조금 전에도 다른 스쿨버스가 지나갔는데, 이 지역 초등학생들의 등하교는 스쿨버스 없이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18:00 Calvor에 도착. 알베르게에 든다. 


 시차 적응도 끝나고, 아침마다 큰일도 잘 보아 왔는데, 오늘은 오전부터 속이 부글거려 약용 죽염을 먹었다. 오전에 들른 바의 화장실에서 약한 설사를 했다. 걱정된다. 약용 죽염을 다시 먹고, 계속 걸었더니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으로 가스가 몇 차례 나오기도 했다. 

  오늘 알베르게에는 우리 셋밖에 없다. 문제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겸하지 않는다는 것. 주인에게 물어보니 500m 떨어진 마을로 가면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다. 침대를 배정받고 짐을 내린다. 두 청년들은 세탁서비스를 이용한다. 8시경 같이 밖으로 나온다. 저 멀리 인구 15,000명의 도시 사리아 불빛이 아름답다. 숙소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적막하다. 가로등도 없다. 우리는 차도 옆을 최대한 조심하면서 지나간다. 차 소리가 나면 졸루카는 핸드폰을 차 쪽으로 비추면서 우리의 존재를 알린다. 바에 도착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 식사 후, 바에서 가족 혹은 친구와 오랜 시간을 술과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즐긴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 우리는 넓고 깨끗한 주방으로 들어가 허기진 배를 채우며 대화를 나눈다. 소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시킨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 우리나라의 분단과 통일문제, 중국과 대만의 자유왕래 가능 사실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는 너무 좋아 이야기를 더 하고 싶으나 알베르게 통금 시간이 밤 10시라서 서둘러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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