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듣는 사람은 없어??
S#1. 각자 일정을 마치고, 이른 저녁/ 집.
남편: 오늘 저녁은 뭐야?
나: (부엌에서 요리 준비하며) 오늘은 갈치. 아, 김치가 너무 익었나? 냉장고에서 김치 냄새난다.
남편: 커피 가져왔는데 마실래?
나: (빨대로 한 입 마신다.) 아이스가 더 맛있네. 근데 차 워셔액 떨어졌어. 채워야 할 것 같아.
아이 1: 엄마! 이거 내일까지 학교에 내야 돼요. 사인해 주세요.
아이 2: 엄마! 이거 안돼~도와줘~
남편: (핸드폰을 바라보며) 나 스카이스포츠 해지한다~
나: (아이 2의 일을 도와주며) 결재했었어? 나 마트 좀 다녀올게.
잠시 후,
나: (마트 짐을 정리한다.) 날씨 진짜 덥다. 에어컨 좀 켤까?
(남편 말없이 에어컨을 켠다.)
아이 1: 엄마, 뭐 사 왔어요?
아이 2: 이거 지금 먹을래!
잠시 후,
(조용-) 남편과 나 둘 다 핸드폰을 바라본다.
S#2. 저녁 식사
나: (황태볶음을 집으며) 이 반찬 처음 만들어본 건데 어때?
남편: 괜찮네. 오늘 쓰레기통 밖에 두는 날이지?
나: 응.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아. 반찬 좀 골고루 먹어야지.
(시선을 바꿔 딸을 바라본다) 딸아. 다리 내리고 똑바로 앉아야지.
나: 그래서 아까 무슨 말하고 있었지?
남편: 뭐? 반찬?
나: (밥을 오물거리며) 아, 응. 반찬이랑 밥 더 먹어~
아이 1: 오늘 학교에서... 재잘재잘
아이 2: 나 화장실!!
(아이 2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S#3. 식사 정리 후
나: 운동 다녀올게. 같이 갈래?
남편: 아니.
(운동 다녀온 후)
나: 아. 피곤하다. 얼른 씻고 자야지.
(아이들 방을 향해) 얘들아~얼른 먼저 씻어~
아이 1: 머리가 잘 안 말라~도와주세요.
아이 2: 오늘 무슨 책 읽을 거야?
(책을 읽은 후)
나: 모두 잘 자-
(아이들이 씻은 후부터 잠들 때까지 남편은 핸드폰을 바라본다.)
대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다.
이 스크립트가 어제 하루에 있었던 대화 전부다. 아니, ’ 대화‘의 뜻을 살펴보니 우리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 일상적인 할 말만 하며 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대화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말하는 사람만 2명 있었을 뿐이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 때는 서로의 말을 듣고, 그것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는 대체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부부사이가 이렇게 영혼 없이
일상적인 말만 하는 것이 일반적인 걸까?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하고,
대화하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일까?
그런 대화를 원하는 것이 욕심이라면, 나의 감정공유와 가족의 계획은 누구와 '대화'를 해야 하는 거지? 친구? 동료? 브런치스토리?
답답한 마음에 하루는 남편에게 물어봤다.
"당신은 집에서 왜 이렇게 말을 안 해?"
"무슨 말?"
"그냥 일상적인 말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당신의 생각, 감정, 계획 이런 것들 말이야."
".....................??
매일 똑같은 일상인데 매일 똑같은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이해가 안된다는 듯 쳐다본다.)
"....................??"
(이해가 안된다는 듯 쳐다본다.)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대화가 되지 않는다. 정말 이상하다. 누구보다 대화가 잘돼서 결혼을 생각한 건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떨어져사는 부부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 집만 이런가? 다른 집 분위기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