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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 1,000명을 만들라고?!

20. 남편말 번역가


"이건 어때?"


내 일상은 두 가지 창작으로 채워진다. ‘글’과 ‘그림’.

글로는 생각을 다듬고, 그림으로는 감정을 표현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표현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진지하다.

며칠 전, 남편 일과 관련된 디자인 작업을 하게 되었고, 저녁 식사 후 몇 가지 아이디어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거침없었다.

“색상이 너무 밝아.”
“디자인이 너무 어린 느낌이야.”
“그 재질은 별로야.”
“윗부분이 더 길어야 돼.”

이 정도면 충분히 콘셉트와 어울리겠다 싶어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 다시 몇 가지를 그려 보여도 결과는 같았다.

‘아니, 이 정도면 디자인이 아니라 나한테 불만 있는 거 아니야?’ 속으로 생각했다.


25살,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가 떠올랐다.
검은 바탕에 [결제를 바랍니다]라는 문구만 덩그렇게 적힌 결제파일. 그 프로젝트를 승인받기 위해 야근을 일삼았던 나. 며칠을 준비했지만 도장 하나 없이 돌아오던 날엔 폭풍 수다와 ‘한 잔의 위로’가 필요했다. 그때 한 잔을 함께 나눴던 사람이 지금 내 앞에서 거절을 말하고 있다.


클라이언트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 응어리가 꿈틀거렸다.
‘그럼, 물론이지. 난 멋진 어른이니까.’

“내 생각에는 이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한번 해보는 게 어때?”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 SNS에 팔로워 1,000명 만들어오면 내가 한번 해볼게."
“.................???”


촉 끝에 현실이 가득 묻어있는 화살 하나가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뿜어져 나왔어야 할 말들이 1,000이라는 숫자 한 마디에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었다.

'많은 이에게 공감과 인정을 받는 당신의 디자인이라면, 내가 한번 믿어볼게.'


내 본 계정 팔로워 수 594명, 디자인 계정 173명. 현실적이면서 냉정한 ‘수치’가 남편에게는 설득의 기준이었다.

다시 대결이 시작됐다.


팔로워 수보다 한 명의 공감이 더 중요한 나 VS 눈에 보이는 정확한 수치가 더 중요한 남편

지극히 현실적인 그는 이유, 근거, 증거, 수치 등으로 설명이 붙지 않으면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정확히 180도 반대에 서있는 나는 감정, 느낌 등이 중요한 사람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따라 그의 말이 유난히 뾰족하게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에도 남편의 현실적인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거다. 100% 맞는 말이다. 결코 일을 한 사람의 느낌만으로 밀고 갈 수 없다. 그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 기분은 질투일까...? 인정일까...?


며칠 전 스레드에는 게시하려는 한 광고를 두고 부부가 설전하는 내용이 올라왔다.
A 이미지와 B 이미지 중 어떤 게 나은지, 두 사람 의견만으로는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아 결국 외부 의견까지 구했던 것이다.

‘왜 항상 부부의 의견은 이다지도 다른 걸까?‘ 공감 아닌 공감을 느끼며 본능처럼 스크롤을 내린다. 결국 그 이미지에는 수많은 의견을 비롯해 현재 마케팅 팀원, 디자이너, 광고 디렉터까지 등판한 후 결론이 났다.


나도 스레드에 올려볼까? 생각했지만 우리 대화의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나의 실력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것.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력을 쌓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팔로워 1,000명도 반드시 달성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당하게 말할 거다.

"봤지?! 내 실력!"


열심히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속으로 예상된다. 남편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내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있었어? 아… 잘했어.”


현실적 기준과 감정적 기준이 달라도 서로의 시도와 노력을 존중할 때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번역 결과

당신이 열심히 도와준 건 알지만, 이번 건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시간 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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