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남편말 번역가
저녁이 되고 아이들이 잠들면 우리 부부는 평소처럼 각자의 취미에 몰입하며 온전한 자유시간을 즐긴다.
F1 경기를 보던 남편이 갑자기 일어나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며 묻는다.
남편은 보통 맥주가 먹고 싶으면 혼자 조용히 꺼내 마시는 사람이다. 나에게 같이 마실 거냐고 물어본다는 것은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신호다.
"당신도 맥주 마실래?" 남편이 물었다.
"응. 나도 잔에 조금만 따라줘.”
맥주가 반쯤 담긴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돌아서는 남편을 보며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저쪽 테이블 남자분이 보낸 맥주네~”
“풉!”
남편이 웃으며 천도복숭아 한 개를 깎았다.
“당신, 내 덕분에 웃으며 살지?” 내가 물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는 거야…” 남편이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든, 있든, 어쨌든 웃으며 살잖아~”
그렇게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던 일을 이어가던 중 문득 복숭아 생각이 났다.
“어?! 복…숭…아?!”
아까 남편이 깎던 복숭아를 확인해 보니 TV 앞에 가져가 혼자 먹고 있었다.
“아니, 나한테 한 조각이라도 주고 가지~ 그냥 혼자 다 먹는 거야?!” 남편을 향해 외쳤다.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안 먹는 줄 알았지~” 남편이 태연하게 말했다.
“...........???”
'응? 콩 한쪽도 나눠먹어야 하는 게 부부사이 아닌가? 하나 끓인 라면에 한 젓가락만 달라고 들이댄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냥 갔다고?' 번역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복숭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한 조각을 포크에 찍어 나눠줄 수도 있고, “먹을래?”라고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저 사소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는 느낌에 투정을 부렸다.
'남편의 ‘남’이라는 글자가 정말 ‘남’(멀다, 무심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스쳤다.
자상한 스타일이 아닌 것을 알지만 바로 옆에 있었는데 정말 서운하네!
복숭아 한 조각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관심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번역 결과
당신 배부른 줄 알았지…? (그래도 물어볼 수 있는데?)
복숭아가 한 개뿐이었어…? (냉장고에 3개 있는 거 봤는데?)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안 먹는 줄 알았지~” 이 문장은 번역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