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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계속된다.

에필로그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남편말 번역가]


2년 동안 번역이 필요했던 순간마다 글을 남겼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정보성 글도, 공감을 끌어내려는 글도 아니었다. 그저 남편과 나의 사적인 대화 속에서 서운할 수도 있는 말들을 ‘번역’이라는 매개체로 풀어낸 것이었다.

의외로 이 글들이 내가 쌓아둔 브런치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와 관심을 받았다. 인기가 높아지니 가끔은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어느 날, 소파에 누워 있던 남편이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내가 글 쓰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내 글을 보고 있는 줄 몰랐다. 그는 [남편말 번역가] 글이 담긴 핸드폰 화면을 내밀며 물었다.
“큭큭, 이거 내 얘기야?”
“응. 근데 당신 불편하면 지울 수도 있어. 남편이 너무하다, 불쌍하다 이런 댓글도 달리거든.”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전혀 상관없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렇게 든든한 응원, 아니 무심한 무관심 덕분에 2년 동안 번역기를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글을 올해 브런치북으로 발간하기 위해 수정작업을 거쳤다. 덕분에 우리 부부의 대화와 일상을 다시 읽어볼 수 있었다.
돌아보니, 우리는 감정적이고 유쾌한 아내와 무뚝뚝하지만 현실적인 남편의 모습이었다.

머릿속에서 번역기를 돌려 긍정적으로 번역하는 아내 덕분에 큰 소리 내며 싸운 적이 많지 않았고, 현실의 화살을 툭툭 던져주는 남편덕에 감정에 깊어지지 않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너무 다르고 달라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모습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의 평범한 일상 안에서 작은 웃음과 사랑도 발견했다. 투닥거림 속엔 관심이 묻어 있었고, 짧은 말 한마디에 질투와 애정이 숨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부부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특별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사소한 웃음, 짧은 대화, 작은 깨달음 하나가 오늘 하루를, 그리고 내일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게 10년, 30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큰 소리가 날 때 큰 소리로 맞받아치기보다, 한 번쯤 번역기를 돌려 유머러스하게 받아넘길 수 있길.

우리의 일상이 미간에 주름이 아니라 미소로 빛나길.


서로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보다 그 속에서 웃음을 찾을 때, 사랑은 더 깊어진다.


나의 남편말 번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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