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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빗, 오지랖 레이더가 꺼졌습니다.

남 신경은 안 쓰는 게 최고더라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오지랖이 넓다


사전에서 ‘오지랖이 넓다’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서 참견하는 면이 있다. 염치없이 행동하는 면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언뜻 보면 인정 많고, 성격 좋은 듯 보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남의 사정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지나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오지랖 없이 살던 나에게 오지랖 레이더가 켜졌다가 꺼지는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쉽지 않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에만 비추어 생각하지 말자.


나는 해외 이사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 글에서 썼듯 향수병과 육아 우울증이 겹쳐 매일 우울했고, 몸이 아팠다. 그래서 나보다 늦게 이곳으로 이민오는 사람들을 보면 나처럼 힘들지는 않을지, 아프지는 않을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탈칵,
오지랖 레이더가 켜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나서서 도와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알 게 된 남편은 그것을 ‘오지랖’이라고 표현했고, 똑같은 상황에서 나는 그것을 한국인의 '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커피 한번 마시자, 우울하면 연락해라 하며 연락했지만 몇 달 뒤 현실을 깨닫게 됐다.


첫째와 큰 나이차를 두고 둘째를 임신했던 A 씨. 나는 이민 적응과 동시에 아이 둘을 혼자 육아하며 우울증이 생겼기 때문에 그녀도 힘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탈칵, 오지랖 레이더가 켜졌습니다.’

만날 때마다 괜찮은지, 힘들지는 않은지 관심을 보였지만 A 씨는 별 반응이 없었다. 알고 보니 A 씨는 이 나라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근처에 친정부모님이 살고 계셨다. 아무런 문제 없이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다.

‘삐빗, 오지랖 레이더가 꺼졌습니다.‘


나보다 늦게 이곳으로 이사 왔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던 B 씨.

‘탈칵, 오지랖 레이더가 켜졌습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아무런 정보가 없을까 싶어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정보도 알려주고, 챙겨줬다. 하지만 B 씨는 이 나라에서 유학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에 건물도 가지고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다.

‘삐빗, 오지랖 레이더가 꺼졌습니다.’


내가 오지랖을 부린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나의 요청이나 부탁 없이 나에게 오지랖을 부린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 문제로 지인들끼리 거리가 멀어진 일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나는 그들의 중간에 위치하게 됐는데, 한쪽에서 나에게 다가와 다른 한쪽과 친구로 지내지 말라며 강한 어투로 경계선을 그어주었다.

‘탈칵, 저 사람의 오지랖 레이더가 켜졌습니다.’

둘의 사이가 아무리 멀어졌다한들 내 친구까지 본인이 결정하려 하다니, 저 사람의 오지랖이 켜졌으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날 필요가 있었다.


‘탈칵‘, ‘삐빗’, ‘탈칵’, ’삐빗…’

오지랖의 버튼이 켜졌다 꺼지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 깨닫게 됐다.


내가 고생했으니
그들도 고생스러울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그만!

내가 오지랖을 부리면
내가 느꼈던 감정처럼
그들도 불편하겠구나.


남 걱정 말고, 나, 잘하자
라는 문장이 뼛속까지 각인됐다. 누군가 다가와 ‘-도와줄 수 있을까요?’라고 요청한다면 기꺼이 도와주겠지만, 내 경험만 의존해 스스로 앞서 오지랖 부리는 일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혹여나 다른 이들이 걱정되고, 챙겨주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잊지 않도록 계속 되뇐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남들의 일을 자꾸 내가 나서서 하다 보면 ‘나’에 대한 온전한 집중을 할 수 없게 된다. 내 머릿속의 집중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잘 알고 더 발전할 수 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기에 너무 아깝지 않은가.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해 뒷말을 하는 시간이라면, 요청하지도 않은 충고나 교훈을 듣는 시간이라면,


나에 대한 온전한 집중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나 핸드폰을 들고 있을 때가 아닌 혼자서 조용히 있을 때 가능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 없이 조용한 생각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신다면, 환경의 변화는 본인이 찾고 만들 수 있는 것이니 가능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전에 핸드폰만 내려놓아도 가능하다고.


오늘도 오지랖 레이더를 끄고 나에게 집중하자.

삐빗, 다른 사람들을 향한 오지랖 레이더가
완전히 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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