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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Sep 08. 2023

모순을 겪어가는 중입니다.

별난 사람

메뉴가 맛없다는 이유로 짜증을 낸다. 푹 빠져 지내던 일에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진다. 늘 다정하고 싶고, 늘 좋아하는 상태로 일하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할 때 화내며 돌아선다. 높디높은 이상에 부딪힐 때면 상처받는다. 기대하는 나는 너무나도 멋있는 사람인데, 실은 회사원1이다. 매일 아침 운동으로 보람차게 출근한다지만 체력에 부쳐 지하도 계단 오를 힘도 없다. 힘들다며 머릿속으로 헬스장을 그만둔다. 그러나 곧 날이 추워지고 미세먼지 심해질 게 걸려서 계속 다니는 쪽을 고려한다. 생각에 생각을 얹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순간 매일 아침 천국의 계단을 오르던 수고는 잊힌다. 노력은 실패의 산실로 정리된다. 유연한 마음이 잘 되지 않은 건, 매일 해내는 이상적인 나와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서다.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대가는 고되다.


모순은 이상만 고집하다 현실에 치일 때 등장한다. 이 기분 나쁨을 피하기 위해선 한계를 살펴 스스로 적당한 난이도를 설정하는 능력이 관건이다. 매순간 이상이 목표가 되면 내게 돌아오는 건 근심과 걱정뿐이지만 그렇다고 목표를 낮추는 방법을 쓰자니 스스로 마뜩잖다. 그래서 중간단계나 우선순위로 숨구멍을 틔워본다. ‘나는 최선을 다할 건데 그중에 먼저 할 우선순위를’, ‘나는 나아갈 건데 잠시 쉬어가며 돌아볼 힘을 낼 수 있는 중간단계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자기최면이라도 시도해야 할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 좋아하는 상대들에게 쉽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이유는 그들을 어쥬 좋아해서다. 난 그들과 가장 좋은 걸 하고 싶었다. 가장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가장가장 좋게좋게로 환상 같은 이상을 그들과 구현하고 싶었다. 그 기대에 어긋나는 상황은 용서할 수 없다. 조심스럽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정말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같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좋아하는 이들과 가장 좋은 것만 나누고 싶은 욕심은 필패한다. 그래서 실망할 바에는 애초에 기대조차 않을 선택을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좋은 마음은 한발 먼 사람들에게 한다. 그때의 실망감은 상대적으로 덜 불편할테니깐 말이다. 말이되냐고? 진짜다.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놓치면 1년 동안 미안하다. 끙끙 앓는다.


다시 어떻게를 생각한다. 운동할 때 고비는 비슷한 순간에 온다. 힘들다싶어 시계를 보면 목표시간의 20분쯤 남아 있다. 그때 난 점심시간 20분 전을 생각한다. 같은 20분이니 곧 끝날거라 믿는다. 기억을 덧씌운다는 건 이런 것 같다. 내게 숱한 이상이 있다. 돈과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연인과 동등하고 싶고, 좋은 식습관으로 건강하고 싶고, 미니멀리즘 삶과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그림과 책을 가까이 하며 살고 싶고 요즘은 5도2촌의 라이프도 살고 싶다. 바람마다 얼마나 많은 모순이 줄 서 있을까. 아직 가진 것도 아닌데 하나 포기하라하면 선택도 못할 중하디 중한 이상이다.


모순에 괴롭다. 인정한다. 그렇다고 이상을 포기할 수도 당장의 현실을 뒤바꿀 수도 없다는 것도 안다. 오늘 할 수 있는 건 잘 했노라, 잘 왔노라며 부드럽고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태도다. 모순이란 말이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보이겠다. 글의 끝문장에서 나는 모순을 겪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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