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단서
지루하다는 말을 통감한 게 일이 년 전쯤이었다. 서른 즈음에서야 지루함을 알게 된 건 정말 운이 좋았던 일이다. 그전까지는 울고 웃느라 지루함을 늦게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감사함은 순간이었고 나는 지겨움을 지우기 위해서 정신을 뺏길 것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생각을 즐기는 시간이 늘었다. 아주 많이 늘었다. 이를테면, 지금 같은 한 겨울이면 크리스마스트리와 노란 전구뿐 아니라 겨울 아침 해가 든 그림자, 뜨거운 히터와 강렬한 재즈음악이 나오는 카페, 체크무늬의 모직 머플러, 커피를 살짝 적신 크루아상과 크루아상의 기름이 살짝 띈 커피 이런 것들로 한겨울의 모습을 늘이며 좋아했다. 고독과 사색이라는 두 단어를 나도 즐기게 되었다.
생각이 많고 많아 걱정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시도 때도 없는 의미부여는 젓가락질을 할 때에도 멈추질 못했고, 눈앞에 상황보다 해석에 정신이 더 팔려 버릴 때 생각에 미쳐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아주 다행히 요즘은 생각보다 더 재밌는 대상이 나타난 것 같다. 질문 없이 묻는 말에 대답만 하는 상대의 무심함에 화가 나서 그것도 아주 대단히 화가 나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글이 써지지 않았다. 생각 정리를 하려 해도 그 사람에 대한 감정에 부딪혀서 의미부여를 할 수 없다. 아이 러브, 아이 미스라는 가사에서 상대가 생각나 새삼스레 소중하다는 말을 곱씹는 다음 감정이 발아하기도 했다. 나의 서사에 이야기꾼이 더 생겨났다. 때때로 그는 생각과 감정을 훼방 놓는 방해꾼이기도 하고 이야기 속의 감정을 넓혀주는 사랑꾼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감정의 너울을 만들어내며 다시 한 번 지겨움과 멀어지게 했다.
- 창밖으로 비친 전구 조명
- 외벽에 진 그림자
실체는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마음을 내어준 사람은 몸 밖의 내가 되어 나로 드러난다. 연말에 사이좋은 데이트를 하고 온 다음날인 오늘은 그리움과 사랑을 매개로 그가 떠오른다. 소중해서 지키고 싶은 것으로 닿아 나를 좋은 곳으로 잇는 매개가 된다. 그렇게 다시 고마움으로 이어진다. 네모난 색종이의 끝을 이어 하나의 고리를 만들고, 고리를 계속해서 이어 붙여 고리목걸이를 만들던 때가 생각난다. 네모가 동그라미가 되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되어버린 신기함이 누군가의 옆에 있을 때 가능해졌다. 이건 지겨움보다 확실히 재밌고 의미부여보다 덜 외롭다. 그래서 내일 또 하고 싶은 게 되었다. 물론 해가 들었다 졌다 할 때처럼 음영이 지는 일이다. 그렇지만 유무해를 따지고 원근법을 적용시킬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이라는 말로 뭉개서라도 부정보다는 붙들어두고 싶은 존재다. 아니 지금은 "어때요?"라고 물어온다면 “좋아요”라고 즉답을 할 수밖에 존재다. 지겨움이 저 멀리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