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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심 Feb 25. 2021

인연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32-1.

서른 살,


나의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았던 연애가 아프게 끝이 났고 나는 그저 한동안 혼자이고 싶었다.




사실 그 헤어짐에 특별했던 것은 없었다.


첫사랑은 이미 해보았을 나이, 서른 살에 6개월 남짓 만난 사람과의 이별이 가슴 절절히 아픈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던 것 같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내게 회사를 그만둘 것과 내조에 전념하는 주부로 살아갈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내 신경을 몹시 거슬렀다. 내가 전문직이었다면, 우리 부모님의 경제력이 훨씬 더 우세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집에 있을 것을 요구했을까라는 생각에 나는 혼란스러웠었다.


내가 그 결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경제적 안정뿐이었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안정적인 결혼생활’이었다. 두 사람이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견고한 결혼생활. 물론 경제적인 안정도 중요했기에 상대의 경제력도 보았으나, 상대의 경제적인 여건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그와 그의 집에서 왜 내게 특정 형태의 결혼생활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위 말하는 '있는 집' 남성이니, 자기 멋대로 와이프를 집에 눌러앉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편협된 사고에 나는 질렸었다. 분명 그래서 헤어졌는데 나는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꼈다. ‘파혼’은 여성에게 더 불리했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주제였다. 속상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마음이 딱딱해졌던 서른 살의 나는 중학교 시절 이후 가장 위태로운 사춘기를 맞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아버지의 퇴직 전 결혼을 재촉하셨던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고, 만남과 이별이 부모님의 탓도 아닌데 앞으로는 절대 결혼하라고 재촉하지 마시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고등학교 이후, 10년 동안 해외생활을 하느라 늘 곁에서 제 몫을 다 못한 딸이었는데 한국에 와서도 나는 여전히 모자란 딸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주말도 없이 회사 일에 매달리면서 그저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냈고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이면 대부분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바빴다.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다짐했건만, 한 집에 살면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한번 하지 않는 게으른 딸로 지내고 있었다.




어느새 2년이 흘러 서른두 살이 되었고, 슬슬 혼자 살 집을 마련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들은 한참 연애 중이거나 결혼 준비를 할 때였는데 결혼이 내게 더 이상 로맨틱하게 들리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결혼만큼은 내 계획에 없었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남자 다 거기서 거기'라며 연애는 뒷전이었고, 솔로였다. 지내다 보니 싱글의 장점도 많았다. 돈, 시간, 에너지 모두가 내 것이니 주머니는 두둑해졌고, 일과 대한 집중력과 관심사는 늘어갔다.


이대로 영원히 솔로일 것 같았던 그맘때쯤,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히 지인의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까무잡잡한 피부, 중간 키, 앳된 얼굴을 가진 지인의 일행 중 한 명이 나를 관심 있게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내 모르는 척했다.


몇 달 뒤, SNS를 통해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고 처음에는 '누구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나를 관심 있게 쳐다보던 그 친구였다.


"혹시 어제 OO 영화관에 있지 않으셨어요?"

"아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봤어요. 저 기억하세요? 그때 OO에서 뵀던"

“네...”

“어제 저녁은 OO 식당에서 드셨죠?”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저랑 일행도 영화 끝나고 거기서 저녁 먹었거든요”

.

.

.

우연히 만난 지인의 일행을 두 번 더 마주쳤지만, 나는 번번이 그를 보지 못했고 그만 나를 알아봤던 것이다. 대화를 이어가다 그는 내게 언제 따로 한번 보자고 했다. 몇 초간 고민하다가 나는 "언제 시간 되면 봐요"라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나보다 한 살 어린 그의 직진 신호는 계속되었고, 우리는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난 그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 그 이상으로 발전시킬 의지는 없었다.




8월 중순쯤, 친한 친구의 브라이덜 샤워가 있었다.


뉴욕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귀국해 좋은 사람을 만났고 알콩달콩한 연애 끝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이태원의 한 식당에서 조촐한 파티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헤어졌고, 샴페인 몇 잔에 취기가 올라와 바람을 쐬려고 조금 걸었다. 한적한 이태원의 골목을 지나 큰길로 나가니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었다. 달콤한 팝송이 거리를 울리고 있었고, 그 주변을 커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여러 커플들 사이에서 가만히 노래를 듣다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가방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말인데 밖이에요?"

"네, 친구랑 저녁 먹고 있어요. 밖이에요?"

잠깐 망설이다가, "아.. 그럼 그냥 집에 가야겠네요. 볼 수 있으면 보려고 했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그는 마침 저녁을 다 먹고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다고, 어디냐고 물어왔고 이태원이라고 하니 지금 바로 출발한다고 했다.


아직 10시도 안 되었는데 일어나려고 했었다니..,

'풋' 웃음이 나왔지만 바로 달려와준다는 그가 기다려졌다.


20분쯤 흘렀을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검은색 SUV를 타고 지나갈 건데 큰길이라 정차가 어려우니 길에서 자기 차를 탔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금방 그의 차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차에 타려니 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는 사람인데,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요즘 세상도 흉흉한데...’


평소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도 있겠지만 천성이 겁이 많아, 나는 차 문을 열고 빠르게 그를 스캔했다. 멋쩍은 듯, 씩 웃으면서 "오래 기다렸죠?"라고 말하는 흰색 옥스퍼드 셔츠와 하늘색 면 반바지 차림의 그를 보는데 왠지 안심이 되었다.


조금 뒤, 우리는 청담동의 한 와인바 앞에서 내렸고 우리의 첫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흔히들 사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만약 그날 저녁 날씨가 그렇게 좋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길가에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가 그토록 달콤하게 들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에게 먼저 연락하지도 만나자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친구와의 약속 자리를 서둘러 정리한 채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날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가끔 그 날의 공기가 생각난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그 날의 공기는 어쩌면 사랑에 빠지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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