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또는 에세이 #15
하늘에 별이 많지 않은 세상이지만, 어릴 적부터 별을 좋아했다. 별자리를 외우고 파란색 별이 더 뜨겁고, 붉은 별은 나이가 많은 별이라는 사실이 참 재밌더랬다. 단지 이해가 가지 않던 것은 오리온자리는 아무리 봐도 사냥꾼 오리온인지 모르겠고, 염소자리는 아무리 봐도 염소인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저 책에 나온 대로, `저 별자리 모양이면 그런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구나.`하고 순순히 따랐을 뿐이다.
생텍쥐페리가 지은 유명한 동화 <어린 왕자>에서 양을 그려달라 부탁하는 어린 왕자에게, 화자인 `나`가 아무 상자나 그려주고는 `네가 상상하는 양은 그 안에 있어.`라고 말했더니 오히려 마냥 신이 나던 어린 왕자처럼 말이다. 어릴 적 내가 상상한 오리온자리는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사람과 더 닮아있었다.
최근 쓰는 글이 늘어나면서, 다 쓴 글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 관건이다. 어렵지 않으면서 흥미를 끌고, 글의 맵시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하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단박에 아우르는 단어와 문장을 찾는 일. 이는 마치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저 별과 이 별을 이어놓고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별자리를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은 '별의 이름'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문화가 발달하면서 수시로 닉네임과 아이디를 생성하고 삭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간혹 이름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덕분에 재치가 넘치는 이름이 많아지기는 했다. 휘발성이 강할 뿐.
그러나 부모님에게 받은 거라면 머리카락도 평생 기르던 옛날엔 이렇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한국 전통문화 중에 하나가, 한 명을 지칭하는 이름이 여러 개라는 것이다. 어릴 때 쓰던 아명(兒名), 본명(本名), 법명(法名) 또는 세례명, 그리고 친지들이 각자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전부 달랐다. 무속신앙에는 팔자가 잘 안 풀리면 개명하기를 권하는 전통도 그래서 남아있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이름의 소중함을 알고,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민족은 이름을 통해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했던 '홍익인간' 정신과,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인본주의로 이어온 것 아닐까.
이름은 누군가에겐 철학이자 정신이고, 신념이자 역사다. 즉 하나의 너른 세계다. 어쩌면 이름은 상대를 이르러, 상대를 존재하게 하는 마법 주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 입으로 말해 상대 귀로 들어가면 그 사람은 비로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걸지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 구절처럼 말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기꺼워 감격스럽다가도 사라질까 두렵다. 당장 어제 일을 후회하다가도 내일은 더 잘살아야지 희망을 품는다. 이토록 한 사람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다. 그러니 함부로 절망을 담아 내 감정을 이름 짓지 말자. 내가 너무 쉽게 불행해질지도 모르니. 그렇다면 내 감정에는 굳이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담자.
여전히 하늘에 별이 많지 않은 세상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별을 동경한다. 저 별 하나하나가 가지각색 빛을 내고 있으니 그 이름들이 여전히 기특하고, 씩씩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아도 저기 있으니, 행여 잠시 길을 잃어도 내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별빛처럼, 꽃처럼 하늘에 피어나기를.
그러니 네 손끝으로 이름 붙인 저 별과 저 별을 이어, 선 하나를 마음에 새길 때 우주와 우주는 그렇게 만나는 거란다. 그렇게, '우리'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담아!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
bkk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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