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를 점령한 인앤아웃의 솔직한 맛과 깨달음
흔히 미국 3대 버거로 꼽는 브랜드들이 있다. In-N-Out, FIVE GUYS, SHAKE SHACK. 이 중 쉑셱버거는 이미 한국에도 많이 들어와 있고, 파이브 가이즈 역시 올해 상반기에 진출 예정이니 남은 것은 인앤아웃이다. 특이한 점은 인앤아웃의 경우 미 서부를 제외한 타 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파이브 가이즈나 쉑셱의 경우 글로벌 런칭을 하여 유럽이나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점에 비하면 인앤아웃 버거의 희소성이 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 서부를 여행할때 한 번 쯤은 인앤아웃을 방문해보면 좋다. 다만 '미국 햄버거'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미국 프랜차이즈 버거'를 경험해보는 느낌으로 기대 없이 가볍게 들러보는것을 권장한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가장 먼저 들른 식당 역시 인앤아웃 이었다. 공항 호텔에서 무척 가까워 도보로 이동하기도 좋았고, 현지에서의 통신을 위해 유심 발급을 하기에 적당한 경로상에 존재했다.
호텔에서 인앤아웃 까지는 큰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되었기에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고, 유심을 사지 않은 상황에서 잠시 통신이 끊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 없이 나설 수 있었다. AT&T에서 선불 eSIM 셋업을 마친 후 바로 인앤아웃으로 이동했다. 특이한 점은 착륙 활주로를 지나는 경로라 그런지 코앞으로 비행기를 만날 수 있었다. 엔진의 굉음은 덤. 아직 LA에 도착했다는게 실감나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 왔다는 기분만큼은 한껏 누릴 수 있었다.
미국 여행 첫 날이라 현지 분위기를 살피며 쫄아있기에 바쁜 나머지 매장 사진이나 메뉴판 사진 등은 따로 담아오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가서 아내는 치즈버거, 나는 더블더블을 시켰고 감튀 둘 중 하나는 애니멀 스타일로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면 우선 음료컵을 나눠주는데, 음료 디스펜서가 매장 내에 있어서 자유롭게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버거와 감튀, 음료를 주는 '세트'를 인앤아웃에서는 '콤보'라고 부른다. 1번 부터 3번 까지 번호가 정해져 있으며, 1번은 더블더블, 2번은 치즈버거, 3번은 햄버거 콤보다. 영어에 자신이 없더라도 콤보 넘버 원, 콤보 넘버 투 이런 식으로 주문하면 어려울 것 없이 결제까지 가능하다.
드라이브 스루를 겸하는 매장이라 생각보다 늦게 나와서 아쉬웠다. 그래도 감자는 즉석에서 튀겨내어 각이 살아있고 식감이 겉바속촉으로 잘 익어있었다. 문제는 햄버거인데, 사실 인앤아웃을 '미국 3대 버거'라는 식으로 묶어서 생각하다보면 큰 기대를 안고 먹게 된다. 그러나 인앤아웃 매장을 들어서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주문 시스템 및 메뉴 구성. 거기에 가격을 생각하고 본다면 인앤아웃은 파이브가이즈나 쉑셱과 동급의 버거로 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2015년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여 인앤아웃과 수퍼두퍼 두 곳을 가봤는데, 역시 그 둘 사이에서 느껴졌던 격차가 이번 인앤아웃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이는 버거의 단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앤아웃은 상당히 저렴한 금액대에 먹을만한 햄버거를 내준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크다. 2023년 1월 기준 인앤아웃의 더블더블 버거는 $3.45 다. 그에비해 쉑셱의 경우 같은 더블 패티를 쓰는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섁버거 더블이 $8.09다. 햄버거 가격만 두 배 넘게 차이가 나는데다가, 인앤아웃에서 더블더블을 콤보 주문을 해도 겨우 $6.70 이다. 즉, 쉑섁에서 간신히 패티 두 장 들어간 햄버거 하나 먹을 돈이면 인앤아웃에서는 패티 두 장 들어간 햄버거를 콤보로 먹고도 남는다. 아, 프라이를 애니멀 스타일로 바꿔주면 딱 $8 정도로 떨어질듯.
아내가 시킨 패티 한 장 짜리 치즈버거는 햄버거라기에는 풍미가 부족했고, 고기를 끼워 먹는 고기빵 수준에 불과했다. 괜히 넘버 투가 아닌셈. 인앤아웃은 애초에 더블더블을 주력 메뉴로 삼고 있고, 다양한 구성을 포기한 대신 재고 부담을 줄이고 원가를 낮춰 공격적인 가격 경쟁이 가능한 것이 장점인듯 하다. 같은 번과 패티를 쓰면서 패티의 장수를 늘리거나 줄이고, 치즈를 늘리거나 줄이면서 오직 '치즈버거' 내에서만 승부를 보는 것이 그러하다. 재밌는 것은, 인앤아웃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NOT SO SECRET MENU 라는 항목이 있는데, 메뉴판엔 존재하지 않지만 주문하면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메뉴들이다.
패티를 세 장, 네 장까지 늘린 메뉴도 떡하니 존재하고 빵을 양상추로 바꾸는 프로틴 스타일도 있다. 그 밖에 다양한 종류들이 있지만 일단 당신이 처음으로 인앤아웃에 방문 한다면 아무런 기대 없이 콤보 넘버 원, 더블더블 콤보를 먹어보는 것을 권한다. 인앤아웃은 잘 쳐줘봐야 맥도날드나 버거킹 수준의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이며, 다만 미 서부 한정으로만 서비스 되기에 어느정도 희소성이 있다 -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다.
정리하면 인앤아웃은 '미국 3대 버거'라기엔 그 퀄리티나 맛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미국 서부를 방문하면서는 아무 기대감 없이 근처 지점을 방문하여 더블더블을 한 번쯤 먹어보는 것으로 족하다. 살벌한 미국 물가에 비하면 그래도 팁 없이 양질의 탄단지를 섭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임에는 분명하다. 마음에 들었다면 이후 3X3이나 4X4 등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혹시나, 한국에 돌아와서도 인앤아웃을 잊지 못하는 그대들에게는 한국에서 인앤아웃과 가장 비슷한 햄버거 브랜드를 소개한다. 크라이치즈버거는 인앤아웃의 치즈버거 소울은 물론, 3X3 이나 4X4 등의 시크릿 메뉴도 제공하므로 인앤아웃의 바이브를 그대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천이 본점이지만, 서울에 있는 몇 군데 지점을 방문해봐도 크게 맛의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으므로 부디 당신의 근처에 크라이치즈버거가 있기를 바란다. 혹은, 미국 방문 전에 인앤아웃이 내게 맞을지 미리 확인해보는 사전 입맛 점검용으로도 좋겠지. 아무튼 내게 있어 인앤아웃은 그저 '미국의 크라이치즈버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당신도 아무런 기대감 없이 가벼운 지갑과 마음으로 방문하시길 바란다.
결국 패티 한 장으로 부족했던 아내와, 햄버거 하나로 부족했던 나는 남은 감튀를 싸들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러 소소한 과자들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과연 우리는 정말 '미국스러운 햄버거'를 이번 여행에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