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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Sep 29. 2021

힘들고 우울한 척하는 것 같아요

떼쓰기

"힘들고 우울한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혼란에 빠진 대학생의 고백이다.

자신의 상반된 모습에서 모순을 느낀다.

아이처럼 떼쓰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9월 29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할 일을 하지 않아 야단을 맞아도 그때뿐이지 고치지 못한다.

힘들고 우울해서 울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탱자탱자 논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그냥 대책 없이 노는 모습이 병신 같다.

힘들고 우울한 척하는 것 같다.


사연자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문제라고 느꼈으면 고쳐야 하는데 왜 고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그냥 한심하게 보일 뿐이다.

자신의 느낌마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사연자한테 미성숙한 내면 아이가 보인다.

떼쓰는 모습이다.

나이가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속까지 다 어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미처 자라지 못한 부분을 가진 채 어른이 되곤 한다.


보호를 받는 어린 시절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

영아기에는 울고 유아기에는 떼를 쓰는 식으로 도움을 구한다.

그런데 이 습성이 나이를 먹는데도 그대로 남아서 내면 아이가 된다.

내면 아이는 성장이 멈춘 영역이다.


과제를 하지 않아서 지적을 받으면 바로 과제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지적받는 것을 싫어하면서 행동을 고치지 않는 것은 내면 아이의 활동이다.

야단을 맞는 것이 싫을 뿐이지 야단을 맞지 않을 수 있는 알맞은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

그래서 내면 아이가 많을수록 성숙한 태도를 보이기 힘들다.


힘들고 우울할 수 있다.

하지만 한바탕 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시시덕거리며 노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다.

사연자는 자신의 내면 아이를 보면서 한심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내면 아이를 비난하고 싫어한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잘 살피고 다독거려 키워주어야 한다.

한심하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가엽게 여겨 보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감정마저 의심해서는 곤란하다.



자기 비난은 답이 아니다.

미처 자라지 못한 내면 아이를 보듬어야 한다.

떼쓰는 아이를 야단치면 떼쓰기가 굳어버리기 쉽다.

더 나은 행동방식을 알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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