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해석
"남자친구에게 칼 세트를 선물로 받아서 놀랐는데 남자친구는 뭐가 어떠냐고 하네요."
한 여성의 고민이다.
선입견에 따른 과잉해석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오해는 커지기 전에 바로 푸는 것이 좋다.
(4월 1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소개로 만난 지 3주쯤 되었을 때 남자친구가 칼 세트를 택배로 보내왔다.
선물이라며 부모님 드리라고 했다.
나는 놀랐는데 남자친구는 칼 세트가 어때서 그러냐고 했다.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우리 문화권에서 칼을 선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미를 담아 칼을 보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복수나 단절 같은 섬찟한 뉘앙스를 풍긴다.
사연자가 칼 선물에 놀랄 만도 하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니 칼 세트가 여러 개 생겨서 주변에 선물한 것이란다.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알고 안도하기는 했지만 놀랐던 마음이 완전히 진정되지는 않았다.
선물이 칼이라서 놀랐던 자신과 아무런 느낌도 없이 칼을 선물한 남자친구가 너무 다른 것이다.
오해를 풀고 잘 만나고는 있다지만 궁금증은 풀고 싶어 사연을 올렸다.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과 온전하게 같을 수는 없다.
한 지역의 문화가 다른 지역의 문화와 비슷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같지는 않다.
보편적인 생각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서로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합의해서 공유할 뿐이다.
예를 들어 상징성은 문화마다 다르다.
한 때 길조로 여겼던 까치가 외국에서는 흉조로 여긴다고 알려져서 이미지를 바꾼 일이 있다.
우리가 까마귀를 흉하게 보았지만 어떤 문화권에서는 행운으로 여기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선입견인 셈이다.
의미나 상징성을 부여해서 마음을 낸다.
한 대상에 다른 의미나 상징성을 부여하기에 오해도 생길 수 있다.
좀 더 너른 시작으로 바라보면 차이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오해는 부족한 이해에서 생긴다.

민감함도 둔감함도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민감해야 한다거나 둔감해야 한다거나 하는 법은 없다.
상징성을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해가 생기면 밝혀서 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