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기연 Jun 26. 2019

보면 사라진다는데

사실 확인

"보면 사라진다."

귀신을 똑바로 보면 사라진다.

고민을 뚫어지게 보면 또한 사라진다.

괴로움을 보면 괴로움이 없다.

왜?



2박 3일간 줄곧 참선만 한 적이 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온몸이 뒤틀리고 들이닥치는 고통이 장난이 아니다.

한나절만 해도 몸과 마음이 탈진 상태에 이른다.


늘 하던 것이 아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함께 하던 교수님은 시간만 나면 즐겨 참선을 하던 분이었다.

그분은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데 난 너무 힘이 들었다.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어보니 그냥 웃으신다.


사실 대단한 결심을 하고 참선하러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 교수님과 바둑을 즐겨 두었고, 참선을 하러 가자길래 흔쾌히 따랐던 것이다.

나도 명색이 불자라서 참선이란 것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당시에 나는 참선보다는 일상 속에서 수시로 염불이나 주력을 하며 깨어 있으려 노력했다.


사흘 동안 참선만 하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의욕을 냈지만 막상 시작하니 깜깜했다.

그래도 그냥 물러설 수는 없기에 다가오는 고통에 맞서 보았다.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냐' 오기를 부리며 씨름했다.

첫째 날 저녁때쯤 고통이 극에 달했다.


반가부좌를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꾸 허리가 구부러졌다.

의식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우며 정신을 차린다.

조금 지나면 다리가 저려온다.

이윽고 다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온다.


다리가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진땀까지 난다.

아예 하반신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다.

온몸에 열이 나며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실제로 해 보시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아무튼 고통과 씨름을 하다가 도저히 견길 수 없을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나름 불교의 진수를 알았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안전하고 편한 곳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참선조차 이렇게 괴로워한다면 말이 되는가.

그럴싸한 교리를 들먹거리면서 깨달은 양 잘난 척하던 모습이 보였다.

우스웠다.

순간 '고통받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을 만한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이 바뀌자 변화가 일어났다.

더 이상 고통과 씨름하길 멈추고 고통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리, 엉덩이, 허리, 어깨 등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그냥 묵직한 느낌으로 변해갔다.

좀 더 느낌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했더니 신기하게도 고통이 사라졌다.


고통과 맞서는 것을 멈추고 받아들이면서 느끼고 관찰하는 순간부터 앉아 있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이후 일정은 그냥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 경험 이후로 내가 참선을 즐겨했을 거라고 예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참선을 별로 하지 않는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고통의 실체를 알고 벗어나게 되는 경험이 소중했다.

화두를 따로 잡아서 가만히 앉아 씨름하는 공부가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선공부를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좌선이라는 형태보다는 일상에서 깨어있는 공부에 치중할 뿐이다.



보면 사라진다.

고통도 즐거움도 왔다 간다.

괴로울 때 괴로움과 싸워서 이기기는 어렵다.

그냥 괴로움 자체를 가만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으로 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괴로움을 보았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