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숲_17회
2026.2.11. 수
저녁 7시, 한국숲해설가협회 심화특강 「공존의 숲」을 줌으로 시청했다. 강사는 40기 홍성범 강사다. 겨울숲바라보기 날자반에서 함께 숲을 걸었던 인연이 있고, 최근 『숲에서 답을 얻다』를 출간했다. 현장에서 숲을 읽어온 사람이 이제는 숲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 관심이 갔다.
강의는 단순한 생태 지식 전달이 아니었다. 숲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이었다.
강사는 울창한 숲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가지 사이로 일정한 간격이 보인다고 했다. 수관기피현상. 나무들이 서로의 가지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현상이다. 빛을 독점하지 않기 위해,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숲의 질서다.
숲은 경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빛을 차지하려는 싸움만 있었다면 숲은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들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 스스로 멈출 줄 안다.
그 장면을 떠올리니 ‘공존’이라는 단어가 추상이 아니라 구조로 보이기 시작했다. 숲은 다층 구조다. 교목이 하늘을 받치고, 관목이 중층을 채우고, 초본이 땅을 덮는다. 덩굴식물은 기댈 곳을 찾아 올라가고, 낙엽은 다시 토양이 된다. 어느 하나가 독점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능을 수행하며 연결된다.
강사는 숲해설가가 개별 수목의 이름을 아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숲 전체의 맥락과 상호작용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대개 ‘돋보이는 한 그루’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숲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숲은 관계의 총합이다. 나의 성장도 누군가의 그늘과 빛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경쟁의 언어는 조금 힘을 잃는다.
2부에서 다룬 스토리텔링 기법은 기술적인 내용이었다. 겨우살이, 차나무, 사과나무, 오래된 나무 이야기. 소재는 다양했지만 방향은 하나였다. 생태와 인문을 연결하라는 것, 지식이 아니라 맥락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강사는 숲해설가에게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숲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숲을 파괴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모순이라는 뜻일 것이다.
강의를 듣고 난 뒤 나는 다시 수관기피현상을 떠올렸다.
서로의 가지가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함께 하늘을 향해 자라는 모습.
공존은 착한 마음이 아니다.
구조이고, 태도이며, 거리 조절의 기술이다.
나 또한 숲처럼 살 수 있을까.
빛을 독점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차지하며, 다른 존재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 사람으로.
강의는 끝났지만 질문은 남았다.
내 안에는 어떤 숲이 자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