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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지 Sep 01. 2024

낭만파로 살아가는 인생

책머리

 '나' 란 사람을 대변해 주는 대표적인 단어를 하나 꼽자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낭만'이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나는 '낭만 빼면 시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내 인생 자체가 '낭만'을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낭만' 가스라이팅을 시전 할 정도이니 말 다 한 것 같다.)


 낭만이 주는 즐거움이 좋았다. 사랑의 달콤함, 언더독의 반란, 로맨틱한 하루, 신념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멋진 영웅들, 이상적인 가치들, 극복에서 오는 짜릿함 등 전부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란 즐거움은 '낭만' 안에 전부 들어있으니까 낭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있어 낭만은 행복이었다.  


 그러나 '낭만'은 행복만 포함하는 것이 아님을 인생을 살면서 천천히 조금씩 배워나가게 되었다. 현실이 차가운 만큼 '낭만'은 실패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낭만스러운 삶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고된 상황 속에서 끝내 승리하는 영화 속 영웅들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사랑에도 실패했었다. 자본의 차가움에 무릎 꿇어 보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 낭만은 실패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사실 그 누구보다 낭만스러운 삶을 살지 못했다. 항상 말로만 낭만을 떠들어대며 이상적인 상상에만 집착할 뿐 실제 행동은 그와 반대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모순적인 나의 모습에 스스로가 실망하여 '낭만'이라는 이상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에 편승하고자 마음먹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저 낭만스러운 삶을 동경할 뿐인 극히 현실적이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겁쟁이였다.


 그렇게 '낭만'을 외면하며 인생을 살아가던 중 내가 나의 시집 '까만 종이 위 하얀 위로'를 집필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낭만'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정의할 수 있었다. 낭만은 실패니까 지금 내가 낭만을 외면하고 있는 삶도 실패의 일부일 뿐이니 낭만을 외면한 것에 대해 미안해할 필요 없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시가 나를 위로 해주었다. 그래서 다시 나답게 낭만스러운 삶을 살아보고자 다짐했다. 나의 시집에 역으로 영감을 받아 낭만에 대해 책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낭만파로써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현실에서 낭만을 간직하며 생존해왔는지에 대한 생존기에 가까운 느낌으로 썼다. 현실과 타협도 하고 실패도 인정하며 슬기롭게 낭만을 간직해 나가는 나만의 인생 생존기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자칭 낭만파들이 낭만스러운 삶을 살지 못한다 해서 좌절하고 슬퍼할 필요 없다고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거짓된 낭만이라 폄하할지도 모른다. 정말 죽음을 불사하고 각자만의 신념을 위해 싸워나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나의 낭만은 보잘것없이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낭만일 수도 있다. 그들의 달콤한 비판마저 아름답게 수용하자. 인정하자. 본질은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 투쟁의 역사가 곧 낭만이니까. 그러나 실패도 낭만이니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낭만파가 되고 싶다.


 이 시대의 낭만파들이여. 낭만을 저버리고 현실에 순응해도 괜찮다. 다시 낭만을 떠올릴 수 있고 낭만이 주는 뜨거움에 가슴이 뛰는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면 현실에 몇 번 무릎 꿇는 게 대수인가. 우리 모두 그렇게 가끔은 현실적으로도 가끔은 낭만적으로도 사는 사람들이니까 용기를 내고 인생을 살아가보자.



-  30살의 나, 낭만파 시인 깜지 -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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