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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지 Sep 16. 2024

라떼

<1부> 사랑과 낭만에 관하여

 나 스스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 낭만파들은 이런 주제를 가지고서 생각해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쯤 생각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사람을 한 단어로만 규정짓는 건 대단히 무례한 생각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나를 대표하는 단어가 있다는 건 그 단어를 매우 잘 알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대표 단어가 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좋을 뿐이다. 나에게 있어 그 단어는 '낭만'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이란 질문엔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 또한 나를 한 단어로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너는 한결같은 사람이고 또 이런 사람이고...' 등 나의 인격이나 성향 또는 외관에 대한 얘기는 종종 들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함축적으로 담을 수 있는 한 단어가 그들의 입 밖에서 나온 적은 전혀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 스스로를 무척 사랑하고 잘 알고 있다 해도 나를 표현할 함축적인 대표 단어를 고르는 것이 엄청 어려운 일 일 텐데 감히 누가 나를 사랑하고 잘 알아서 그런 대표 단어를 선물해 줄 것인가. 그러니 혹시나 누군가 당신을 표현할 한 단어를 선물로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니 꼭 놓치지 마시길.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잘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에게 '단어'를 선물해 주었다.


 나는 뮤지션이자 작가이자 책방 주인인 '요조'님의 오랜 팬이다. 그리고 나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감수성이 흘러넘치던 고등학교 시절, 요조 님의 라디오 방송인 '요조의 히든트랙'을 접하고부터 장장 13년 차 팬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종의 짝사랑을 하고 있는 팬이다. 수시로 공연을 찾아가거나 책방을 방문하는 등의 적극적인 팬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짝사랑을 하는 팬이었다. 마치 짝사랑처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때 떨리고 무서워서 오히려 근처에 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팬심을 갖고 있는 다른 대상들에게 조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독 요조 님에 대한 내 마음은 정확히 짝사랑에 가까운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감미로운 목소리로 나의 외로운 수험 생활을 함께해 준 고마움일지도 모르겠으나 조금은 그 이상의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사회인이 되었다. 요조 님에 대한 팬심은 짝사랑보다는 조금은 희미해졌지만 그럼에도 가까이 가면 상대방이 부담을 느낄까 봐 하는 내재적인 불안함이 묻어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멀리서 응원하는 거리를 두는 팬에 계속 머물렀었다. 그렇지만 꼭 한 번은 요조 님이 공연을 하든, 행사를 하든 한 번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와중 마침 EBS 스페이스 공감 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신 특이하게 티켓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사연을 보내 당첨된 사람만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얘기를 지금처럼 내 사연을 구구절절 담아 보냈다. 그리고 최대 2인까지 입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첨 확률을 높이고자 당시 여자친구였던 윤에게 같이 사연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사연에는 내가 예상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있었다.


 '요조 님의 <좋아해> 노래 가사에 나오는 '너무 달지 않은 라떼' 같은 제 남자친구가 학창 시절부터 오랜 팬이에요. 항상 같은 달달함으로 너무 달지도, 뜨겁지도 않게 변함없는 사랑을 해주는 남자친구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어 신청합니다.'


 그동안 여자친구가 나를 한결같은 사람이라 많이 칭찬해 주고 좋아해 줘서 어렴풋이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를 알고 있었지만 '라떼'라는 함축적인 단어가 내게 선물한 사랑은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함축적이라 해서 나를 전부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나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가끔은 단어 하나가 내게 주는 의미는 그 이상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의미를 곱씹으면서 다른 누군가가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그 의미가 절대 작지 않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담아두며 그 이후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선물해주곤 한다. 다른 이에게도 마음속 잊지 못할 사랑과 위로의 각인이 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의 사랑에 대한 시선도 조금은 바뀌었다. 사랑의 낭만은 로맨틱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설레어하며 연애적인 로망도 채워야 하고 매일 새로워야 할 것만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선물해 준 라떼 처럼 사랑의 낭만이 달콤한 로맨스만을 노래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 생각한다. '너무 달지 않은 라떼' 처럼 편안함 속에서 한결 같이 변함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도 사랑의 낭만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적당한 온도를 맞추는 것이 더 어려울 때도 있는 법이니까. 어쨌든 그런 라떼 같은 사람이 나여서 너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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