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낭만은 로맨스가 전부는 아니야, 실패와 고통도 낭만이지
'무례하긴, 순애야'.
일본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에서 등장한 유명한 명대사이다. 이번에도 만화를 통해 사랑과 낭만에 대해 노래하고자 한다. 나의 영감은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만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아무튼, 이 명대사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인공인 옷코츠 유타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소꿉친구인 오리모토 리카를 사고로 잃게 된다. 갑작스러운 소꿉친구의 충격적인 죽음으로 인해 유타는 그녀에게 저주를 내리고 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 그녀가 성불하지 못하게 이 땅에 저주의 원령으로서 남도록 저주를 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흉축한 몰골을 한 저주의 원령으로서 그와 함께 지내게 된다. 작중 최종 결전에서 유타는 리카의 힘을 빌려 적인 게토와 상대한다. 유타는 리카에게 힘을 빌릴 때 그녀에게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키스를 했다. 흉측한 모습의 괴물(리카)에게 키스를 하던 유타를 보고 게토는 여자의 마음을 이용한다며 그를 일갈한다. 이에 유타는 희대의 명대사를 날린다.
'무례하긴, 순애야'.
처음 이 장면을 보고 낭만 가득한 순수한 사랑에 감탄하며 봤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아주 심오한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댓글을 보다가 우연히 다른 사람의 해석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순애의 '순'이 純(순수할 순)과 殉(따라 죽을 순)의 중의적인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결전에서 유타는 힘의 제한을 해제하는 속박의 대가로 원래 리카와 함께 죽을 운명이었다. 유타는 그녀와 함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원래 리카의 존재 의의는 리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리카를 사랑해서 함께 따라 죽겠다는 의미는 결국 리카를 사랑해서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도 같이 포함되어 있었던지라 리카에게 부여된 저주가 해주 되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랑이 리카에 대한 미련과 집착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랑이 죽음의 저주로부터 자유를 부여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랑이 그와 그녀를 구원했다. 리카는 고통스러운 저주를 끝내고 무사히 성불할 수 있었으며 유타는 저주의 대가를 받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순수한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따라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사랑과 일맥상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원래도 나는 사랑과 죽음은 서로 뗄 수 없는 같은 의미라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죽음까지 불사하는 맹목적인 사랑은 경계한다. 오히려 유타와 리카는 죽음을 각오한 사랑을 통해 미련과 집착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랑이 집착이 전부는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매번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 에 대한 질문에 나는 ’ 죽음‘이라 답하고 싶다.
죽음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최종 단계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으로써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말 죽느냐 마느냐의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결정했으면 죽음도 불사하는 다짐이 있어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믿는 것이다. 그만큼 사랑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 감정과 혼동하여 사랑이라 말하지만 사랑은 행복만이 아닌 고통과 슬픔도 동반하기에 절대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느낀다.
정말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한번 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사실은 죽음을 각오한 사랑의 이면에는 상대방이 나를 죽음의 절벽으로 내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또한 죽을 만큼 차가운 현실이 사랑을 베고자 할 때 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닌 함께 사랑을 지켜냄을 믿는 것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가까이했음에도 구원받은 유타와 리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