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의 다양한 의견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by 여여

고향의 내 친구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동생들이 굳이 자신들의 집 앞 요양원에 모신뒤 동생들은 손쉽게 어머니를 가스라이팅하여 어머니 명의의 부동산을 처분하여 나 몰래 가져갔다. 동생들은 그러한 사실을 약 8개월 이상 내게 비밀로 했다. 그리고 올 4월 아내 앞으로 스마트폰 문자로 그 내용을 통지했다.

동생들이 의사능력 없는 어머니의 신분증과 인감, 그리고 통장을 이용하여 부동산 처분을 추진하고 있을 즈음, 경희의 아들이 재수 끝에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는 축하한다며 등록금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행동이 대단한 선행은 아닐지라도 나는 집안의 맏이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나름 애를 써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생들은 나의 이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부동산을 맏이인 나 몰래 처분하여 나눠가졌다는 사실에 놀라, 지인에게 하소연하며 주변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요즘 일반 소시민이 조카가 대학에 입학했다고 수백만 원하는 등록금을 주냐? 주면 용돈 몇 푼 주는 게 일반적이지. 조카 대학 등록금을 주니 동생이 생각하기를 오빠는 경제적으로 엄청 여유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만하다"라고 말하더라.

우리 형제들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눈에 띄는 큰 재산은 없었다. 그동안 동생들이 주식투자실패, 이혼 등으로 생활이 어렵다며 징징거리자 부모님이 경제적 지원을 한 것도 그리 큰돈은 아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재산규모가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평소 어려워도 성격상 부모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부모에게 도움을 청한 사실이 없었다.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맏이를 마음속으로 든든하게 생각하셨던듯하다. 나라고 긴 세월 살면서 어찌 어려움이 없었겠느냐마는 장성한 자식의 도리로 늙은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지는 못할 망정 경제적 도움을 청한 다는 건 내 상식으로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절약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 어머니는 공무원인 아버지가 매달 주시는 생활비를 모아 목돈을 만들어 소위 돈놀이(사채업)를 하였는데 맏이인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사채놀이를 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채를 빌리러 밤늦게 우리 집을 찾아 무릎 꿇고 읍소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가 하면 돈을 받지 못하여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과 전쟁하듯 다투던 일상을 나는 많이 보았다. 나는 코흘리개였던 시절부터 주변 상황을 잘 인식했던듯하다. 어머니가 시어머니(내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아버지가 장모님(내 외할머니)을 대하는 예의 바르지 못한 태도에 대하여도 내 나름 못마땅한 부분들이 많아 내 부모님을 마음속으로 원망한 적이 많았다. 반면 동생들은 어린 탓도 있었겠지만 동생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그런 면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어머니의 돈놀이에 대해서 맏이인 나만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내 친구들 부모님들처럼 농사를 짓거나 직장을 다녀 받은 월급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친구들의 가정이 부러웠다. 나는 부모님이 사채놀이 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는데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사채놀이를 통하여 번 돈으로 우리가 먹고사는 거라는 어머니의 설명에 난감해하기도 했었다. 어머니의 사채놀이는 몇 푼 이자를 받아서 득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채무자가 원금 전체를 갚지 않고 도망가거나 상환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으로 큰 득이 없을 듯하여 말리고 싶었지만 어린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사채놀이로 번 돈으로 좋은 옷과 음식을 구입하는 대신 검소하게 사는 게 더 낫다는 소망을 가지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8 순즈음에도 돈놀이를 하셨던듯하다. 따라서 어머니 수중에는 항상 얼마간의 현금이 있었다. 나는 그런 현상을 어려서부터 잘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언젠가 부모님 집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현금 뭉치를 내게 내밀면 동생들에게 주라며 극구 사양하였으며 어머니는 동생들에게도 현금 뭉치를 건넬 때마다 "우리 큰아들은 너희 동생들 더 주라며 받지 않더라. 그런 오빠(형)가 요즘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나를 칭찬하였다 한다. 어머니가 동생들 앞에서 나의 행위를 칭찬한 사실은 이번에 동생들이 어머니 집을 나 몰래 매각한 이유로 내세우기도 하였다. 즉 동생들은 어머니 집을 매각하고 매각대금을 가져간 후 내세우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내왔다. 즉 "어머니 말로는 오빠가 평소에 동생들 많이 생각했다는데 이번에 우리가 어머니 집을 팔아서 그 돈을 우리들끼리 나누려는 계획에 반대하여 우리가 오빠에게 알리지 않고 어머니집 판돈을 우리끼리 나누게 된 거야"

나는 동생들이 어머니집을 팔아 그 돈을 우리 형제들이 나누자는 의견을 들었을 때 반대했던 기억이 났다. 어머니 생전에는 어머니 재산에 손대지 말자. 왜냐하면 어머니가 모은 돈이니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 노후를 위해 부족함이 없이 지원하고, 돌아가시고 나서 남는 돈이 있으면 그때 유산으로 상속받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동생들이 이번일을 벌인 것은, 내 의견에 따를 경우, 어머니 사후에 남는 돈도 줄어들고 상속재산은 법적으로 균등 분할하게 되어 자기들 몫이 보잘것없을 거라는 판단에 따라 나 몰래 어머니집을 팔아 매각대금을 자기들만 가져간 것이었다. 동생들이 저지른 일을 파렴치한 중범죄라 생각하며 흥분했지만 한편으로 남도 아닌 내 동생들이 어쩌다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고 안타깝고 한편으로 불쌍하기도 하였다.

나도 평생을 월급쟁이로 살아왔고 이른 나이에 퇴직 후 벌이가 없어 고민하다 지인의 소개로 작은 사업에 투자했다가 나의 노후자금 전체를 탕진하기도 했다. 다만 아내의 강력한 반대로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지는 않고 직장 생활하며 저축한 나의 비자금만을 투자하여 그 돈만을 전액 잃어버려 집안을 거덜 내지는 않았다. 그 결과 겨우 국민연금(노인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 재산에 손을 댈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동생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크게 당황하고 감정적으로 흥분하여 합리적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까운 지인들의 지혜를 빌리고자 했다. 그리하여 생각을 정리하여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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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필명은 如如(여여)입니다. 절개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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