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을 힘들게 보내셨는데...
고향에서 친구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며칠 후 나는 상경길에 올랐다. 낙상 후유증으로 전혀 몸을 가눌 수 없게 된 상황에서도 몸에 채운 기저귀가 불편하셨는지 아니면 기저귀를 찬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우나 요양사와 큰소리로 악을 쓰며 다투던 모습을 떠올리며 상경하였다. 평소 아버지의 성격상 후자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가족들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가족들이 받아낸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요양병원이 없었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요양원이라는 편리한 수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뜻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집에서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낼 자신은 없었다. 아버지는 인지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요양원에는 안 간다고 악을 쓰셨다. 병원에 진찰받으러 가기 위해 차에 타실 때에도 행여 요양원에 데려가는 줄 알고 지팡이로 자동차를 후려치기도 하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신 적도 있다. 아무튼 아버지께서는 요양원에 맡겨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셨다. 그러하신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심란하였다. 이번에 요양병원에 입원시킬 때에는 아버지께서 전혀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이동식 침대에 누워 계신 채로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반대하실 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걸 모르셨는지 알 수가 없으나 요양병원에 입원할 때에는 반대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으셨다. 요양원이 없었던 옛날이었다면 어땠을까.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돌보는 가족도 힘들었겠지만 병석에 누워서 대소변을 봐야 하는 환자도 비위생적 상황이어서 모두가 최악이었을 것이다.
상념에 빠져 상경한 후 며칠 있다가 요양병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 염증수치가 급격히 올라가 위급하다고.... 그리고 얼마 있다가 동생 경수로부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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