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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토끼 Jul 28. 2019

끈적하고 달콤한 밤공기가 마음을 쥐어 흔드는 날

아우라

한낮의 열기가 숨 막힐수록 적당히 식은 여름밤의 공기는 달콤해진다. 한강의 밤바람이나 하늘을 수놓는 폭죽이 굳이 더해지지 않더라도 가슴이 쉽게 달뜬다. 여름밤 고유의 습도와 온도가 그런 마법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여름밤에는 여름밤의 아우라가 있다.


유일하고도 아주 먼 것이 아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회적인 현상.


‘아우라’에 대한 벤야민의 정의이다. 아우라는 이렇듯 고유하고 순간적이다. 달빛 아래 언뜻 드리웠다 사라지는 그림자 같다. 저 먼 하늘의 달처럼 잡을 수 없지만 손끝을 비추는 달빛처럼 아주 가까이 있기도 하다. 그 찰나가 간직한 분위기는 찰나이기 때문에 잊을 수 없다. 대체될 수도 없다. 어떤 강렬한 느낌을 주는 예술 작품 앞에서 우리는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아우라를 느낀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란 실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소설 <아우라>에서 펠리페는 그렇게 아우라를 사랑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요정의 장난으로 홀린 듯이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들처럼 그는 홀린 듯이 한 줄의 구인 광고를 읽고, 어둠과 향기로 가득한 정원과 복도들을 지나, 한 소녀의 눈동자를 본다.


방 안의 불빛이 두렵기라도 한 듯, 그녀는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해. 드디어 그녀의 두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 안에서 너는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치다 이내 잠잠해지곤 다시 파도를 일으키는 초록빛 바다를 발견해. 그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넌 꿈이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여. 여태까지 보아 온, 그리고 앞으로도 볼 수 있는 그저 아름다운 초록빛 눈일 뿐이라고 말이야. 그런데도 끊임없이 출렁이며 변화하는 이 눈은 오직 너만이 알아볼 수 있고 열망하는 그 어떤 풍경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


녹색 눈동자를 지닌 이 신비로운 소녀의 이름은 아우라이다. 그녀는 이름 그대로 유일하고도 순간적인 존재이다. 그녀를 본 순간 오직 그녀만이 펠리페의 유일한 열망의 대상이 되며 그 열망은 모든 이성적인 의심과 판단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순간적이어서 그의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가도 다음 순간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없다.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펠리페는 몇 번이나 그녀의 이름을 되풀이해서 중얼거린다. 마치 주술을 행하듯이. 그리고 주술은 결국 실체를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이 이야기 속의 시간은 영원히 반복되어 흐를 것만 같다.


이 기묘한 이야기에서 논리적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문장들은 사건의 전개보다는 어떤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어둠과 습기를 품은 문장들은 오래된 고딕 천장의 문양처럼 섬세하게 배치되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몇 문장만 인용해 본다.


밤이야. 저 높은 유리창 너머로 먹구름이 속력을 내며 지나가. 구름은 자신을 증발시키려 하고 창백하게 웃는 달이 둥근 얼굴로 흘리는 불투명한 빛을 찢어 버려. 하지만 어두운 수증기가 내뿜는 빛이 약해지기 전에 달은 스스로를 드러낼 거야.


서술자가 펠리페를 ‘너’라고 지칭하는 2인칭 화법 역시 이 독특한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주술사가 너는 이러한 사람이며 이렇게 될 거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아서 어느 순간 나 또한 펠리페처럼 노곤하고 무기력한 마음으로 아우라의 주술적 세계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만든다.


너는 이제 다시 시계를 보지 않을 거야. 그 쓸모없는 물건은 인간의 허영심에 맞게 조정되어 거짓 시간을 재고, 지겹도록 긴 시간을 표시하는 바늘들도 진정한 시간, 즉 모욕적이고 치명적으로 흘러서 그 어떤 시계로도 잴 수 없는 시간을 속이는 것에 불과해.


명료한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아마 이 소설을 읽고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마음의 동요에 일관된 서사라는 것이 있을까. 서사란 과거의 순간들을 현재의 시각으로 다시 실에 꿰맨 것인데, 이 순간이란 애초에 일회적인 성질의 것이라 결국 실에 꿰어져 있는 것은 결국 그 순간이 남긴 잔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사는 그 잔상들을 제멋대로 엮어 '나는 이렇게 사랑에 빠졌어', '나는 이렇게 절망에서 벗어났지'라며 남들에게 들려준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마음의 동요에는 서사가 없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만이 있을 뿐이다. 순간 나타나고 순간 사라진다. 그 순간들을 서사라는 실로 억지로 꿰어두려고 할 때 마음은 허상의 세계에서 표류하고 만다. 마치 이 이야기 속의 노파 콘수엘로가 그러하듯이. 과거의 순간들을 붙잡아 두려는 콘수엘로의 집착은 결국 자신을 껍데기로 만들고 자신의 환영을 진짜로 바꾸어 버린다. 펠리페 역시 순간의 아름다움을 붙들려는 욕망을 놓지 않는 한 아마 그 허상의 세계를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여름이다. 서사보다 순간의 힘이 강렬해지는 계절이다. 아픈 순간도 스쳐가고 황홀한 순간도 스쳐 지난다.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아주 조금만 그리워하기로 한다. 간밤의 꿈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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