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을 물리쳐줘

지금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을 불면의 동지들에게

by 은토끼

양 하나, 양 둘, 양 셋.

따뜻한 우유 한 잔.

무지하게 지루한 책.


이것은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내가 내렸던 처방전들이다. 종종 약효를 발휘할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하였다. 그럴 때는 두세 시간 정도 겨우 설치듯 잠을 자고는 출근했다.


나는 만성적인 불면증 환자는 아니다. 주중에는 피곤에 절어서 기절하듯이 자고, 주말에는 밤늦도록 놀다가 다음 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 후회하는 매우 보편적인 직장인의 수면 패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어쩌다 잠자리에서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이 생각들이 끝없이 이어진 열차가 되어 나를 강제 탑승시킨 채로 쉽게 내려주지 않는다. 아이유는 자신의 불면증으로 <무릎> 같은 아름다운 노래들을 만들기라도 했다는데 내 불면증은 번 건 없이 세금만 잔뜩 내게 하는 것 같다. 허무하고 억울하다.


난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을까.


불면의 밤마다 이에 대해 고민해 보았지만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낳을 뿐 이번 생에는 아무래도 해답이 없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다행히 해답은 아니지만 요령 비슷한 것을 하나 터득한 것이 최근의 결실이랄까.


요령은 이러하다. 잡생각이 들기 전에 딱 하나의 이미지만 집중해서 상상한다. 너무 복잡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니 최대한 단순하고 고요하되 어떤 반복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풍경이 가장 적절한 이미지가 되겠다. 특히나 불면증이 심해지는 이번 여름에는 주로 한적한 호숫가에 묶어 둔 작은 배 위에 누워 있는 이미지를 주로 떠올렸다. 등 아래로 잔잔한 물결이 출렁이고,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잠시 뜬 실눈 사이로 별들이 쏟아지고, 그 곳에서 아무 걱정도 후회도 없이 스르르 잠이 드는 풍경을 상상하는 거다. 비록 현실은 출렁이는 물결과 바람이 아닌 삐걱거리는 매트와 선풍기라 해도.


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뭐 대단히 신박한 요령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세상 모든 불면증 환자들의 눈을 확 뜨이게 할 만한 신박한 무언가를 개발해냈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최소 건물주의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인데 아무래도 이 역시 이번 생에는 글렀다. 불면증에 있어 보편타당한 조언이란 역시 심각해지면 병원에 가야한다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잠조차 쉽게 들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자그마한 요령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즐거움, 그 작은 즐거움을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되새겨보는 이중의 즐거움이 있어 나는 오늘도 불면의 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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