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의 보살핌

by 흑선백지

누나가 두 살짜리 조카와 집에 놀러 왔다. 나는 잠시 아이를 들어 비행기 태워주다가, 불의의 사고처럼 조카의 침 한 방울이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웃었고, 나는 별일 아니라고 넘겼다.


그날 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근육통이 오고 속이 뒤틀렸다. 아침이 되자 제대로 걷기 어려워 누나와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장염이라고 했다. 조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요즘 유행이라고 누나가 말했다. 나는 링거를 맞으며 그 말을 멍하게 들었다.


천장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내가 오늘 얼마나 아팠는지, 삼촌이 왜 갑자기 응급실에 누워 있는지, 앞으로도 영영 기억하지 못하겠지. 조금은 속이 좁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픈 사람에게는 대체로 그런 종류의 생각부터 떠오르는 법이다.


그러다 기억의 방향이 느리게 바뀌었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웃던 장면이 떠오르자, 내가 잊고 지낸 보살핌들이 함께 따라 올랐다.


어머니는 종종 말하곤 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옆집 아주머니가 나를 자주 맡아주었다고. 어머니가 아플 때는 외할머니가 나를 등에 업고 김장을 하셨다고도 했다. 그 장면들은 내 기억 속에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시절을 멀쩡히 통과해 지금 여기에 있다.


아마 그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손길, 미세한 돌봄과 반복된 인내가 층층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쉽게 깎아내리는 이유는 그 보살핌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새로운 성취를 찾아 헤매기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 숨어 있는 그 보이지 않는 보살핌들을 한 번씩 떠올려보아야 한다. 한 번이 아니라, 아마 천 번쯤.


생각하다 보니 링거가 거의 다 내려 있었다. 나는 누나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집에 도착하니 조카는 세상 편하게 잠들어 있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작은 손을 잡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보살핌이, 또 하나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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