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려야 할 고집이 가지고 온 결과.
세상 사람들 누구나 고집이 있다.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는지가 다를 뿐이지 누구나 고집을 부린다. 심지어 우리 부모님 댁의 강아지, 석순이도 꺾이지 않는 고집이 있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서 십오 년째 생활 중인 우리 석순이는 절대 집 마당에서 용변을 보지 않는다. 근처 산책로에 있는 공터에서만 큰일을 치른다. 석순이의 고집 때문에 아버지는 석순이가 낑낑댈 때마다 마다 30분 거리의 근처 공터까지 강제 산책을 다녀오신다. 장대비가 쏟아져도, 함박눈이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석순이 목줄을 잡고 나서는 아버지의 석순이 사랑도 고집이라면 고집이겠다.
나도 석순이만큼 고집쟁이가 되어야만 했던 순간이 있었다. 대학 시절 학교 밴드 동아리의 부장을 맡았었다. 9월에 열리는 인문-사회대학 공동 축제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고 신입생들을 무대에 세우고자 4월부터 곡을 정하고 세션을 지정해 연습을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까진 아니었지만 나름 쉴 때 안 쉬고, 해야 할 공부 안 하고, 마실 술 안 마셔가며 5개월을 연습실에서 살았다. 여름의 더위가 가을바람에 밀려나기 시작했고 드디어 디데이가 됐다. 공연 리허설을 위해 악기 세팅을 하는데 세컨드 기타를 맡은 신입생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봤더니 기타를 연결할 앰프가 없었다. 나는 음향 팀에 가서 앰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요청한 대로 준비했다’는 짧은 답변만 되풀이했다. 나는 학생회장에게 달려가 앰프가 없으면 공연이 어려우니 빨리 앰프를 구해달라고 읍소했다. 이 상태로는 공연이 어렵다고 계속 말하던 찰나,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돌아보니 우리 과 학회장 S였다. 나보다 네 학번 선배였던 그는 돌아선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너희가 무슨 연예인이야? 하라면 대충 하면 될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비싼 척이야?’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이십여 년 이십여 년 전에는 선배는 곧 군대 선임과 같았다. 나는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힌 채 질질 끌려 일 층의 화장실로 끌려갔다.
‘앰프 없으면 안 합니다. 반년 동안 오늘만 보고 연습한 애에요. 세컨드 기타 못 올리면 절대 안 합니다.’
S의 욕설과 위협, 조롱이 이어졌지만, 난 고집을 부렸다. 내 안에 무언가가 끓어올랐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은 정말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었다.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었던 그때,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다. 학생회에서 근처 대학교에 있는 앰프를 빌렸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S에게 인제 그만 가보겠다고 말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봉고차에 앰프가 실려 왔다. 바로 시작된 리허설을 무사히 마치고 본 공연도 문제없이 마무리됐다.
그 이후론 특별히 고집을 부려 본 적이 없다. ‘술자리에서 안주로 두부김치만은 절대 안 된다.’, ‘국내 힙합 최고 존엄은 누가 뭐래도 빈지노다.’ 이 두 가지 말곤 딱히 고집부릴 일이 없었다. 그렇게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유하게 살아오던 내가 다시 똥고집을 부릴 일이 생겼다. ‘로저 페더러’ 때문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포핸드 스트로크 연습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스윙도 안정적이었고 공이 떨어지는 지점도 대부분 반대편 코트 안쪽이었다. 기계처럼 내게 공을 쳐주던 코치님은 공과 라켓을 내려놓더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자 이제 백핸드 가르쳐드릴게요.’
오오. 백핸드 스트로크!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강력한 무기였던 원 핸드 백핸드 스트로크. 테니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테니스를 마음속에 품게 만든 동작이다. 라켓을 든 오른손을 이용하여 자신의 왼쪽으로 오는 공을 받아치는 기술인데 동작의 특성상 공을 타격하기 전 오른손이 몸을 넘어가 왼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왼손으로 라켓의 목 부분을 붙잡고 있다가 공이 타격 지점에 도달하면 오른손에 들린 라켓이 커다란 호를 그리며 공을 타격한다. 라켓 목을 잡고 있던 왼손은 뒤쪽으로, 라켓을 든 오른손은 앞쪽으로 쭉 뻗은 모습으로 동작이 마무리된다. ‘멋지다’를 넘어 우아하기까지 하다. 마치 발레리나의 마무리 동작을 보는 듯한 페더러의 원 핸드 백핸드 스트로크는 역대 최고의 백핸드 스트로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내가 드디어 그 백핸드를 배우게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일어나 트리 밑에 놓인 상자의 포장을 뜯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코치님의 시범 동작을 쳐다봤다. 코치님은 양손으로 라켓을 잡았다.
‘자. 이런 식으로 양손으로 라켓을 잡고…’
양손이라니?! 아니, 코치양반! 양손이라니? 양손이라니?!!
코치님의 설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잠깐만요!’라고 외쳤다. 코치님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 원핸드 백핸드 배우고 싶은데요?”
코치님은 깜짝 놀란 표정에서 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요즘 다 양손 치지, 원핸드 안쳐요.”
나는 당당하게 세 글자를 외쳤다.
“페더러.”
코치님의 표정은 놀람에서 황당으로 변했다.
“아니. 페더러는 페더러고. 원핸드는 강하게 치기도 힘들고 밸런스도 잡기 어렵고…”
코치님은 전날부터 암기해 온 사람처럼 내가 원 핸드 백핸드를 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쉬지 않고 이유를 내 얼굴에 퍼부었다. 하지만 내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래도 원핸드 하고 싶어요.”
코치님은 마지막으로 내게 읍소했다.
“선생님은 체격도 좋고 해서 내가 더 신경 써서 그러는 거예요. 테니스 잘 칠 거 같아서.”
그 말에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코치로써 제자가 쉽고 편한 길로 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핸드 할래요.”
“아…”
코치님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결심한 듯 내게 말했다.
“아… 나중에 딴말하기 없습니다? 투핸드로 바꾸겠다고 하면 안 돼요."
내 대답은 간결했고 마음은 다시 두근거렸다.
내 고집의 결과는 내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코치님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아니. 어떻게 원백을 이렇게 잘 치지? 내가 배워야겠는데?”
백핸드 레슨을 받고 3회 차 만에 나온 코치님의 감탄이었다. 코치님은 자신의 칭찬이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내 레슨 시간 앞, 뒤에 있는 레슨생들을 불러다 놓고 나에게 원핸드 백핸드 시범을 보이라고 시키기도 하셨다. 진짜 신기하게도 나는 포핸드보다 백핸드가 더 편하고, 쉽고, 정확했다. 공과의 거리를 잡기도 편했고 스윙 스피드도 더 빨랐으며 라켓 면도 훨씬 잘 만들어졌다. 코치님이 내 백핸드에 더 이상 감탄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 어느 레슨날, 코치님이 내게 말했다.
‘백핸드는 이제 가르칠 게 없네. 그냥 지금처럼 해.’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투빽(투핸드 백핸드)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고집이 있다. 그리고 그 고집을 부려야 할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언제인지 몰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가 오면 저절로 알게 된다. 마음이 내는 확신의 소리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은 그 어떤 알람 소리 보다도 명확한 신호다. 그 신호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당신의 확신. 그거 하나면 충분히 고집의 이유가 된다. 그런 순간이 다시 오면 난 주저 없이 또 한 번 고집쟁이가 되겠다.
내 삶에 또 다른 ‘원핸드 백핸드’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