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자주 부당했다
"명 짧은 여자가 잘못 들어와서, 우리 아들 신세만 망쳤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은 명절, 할머니의 외침이었다.
아직 모든 게 상처이고 꿈만 같았던 그때의 나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 장지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빠의 비보 때문에 당숙에 육촌까지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있었다.
낯선 장례식장과 긴 여정에 지쳐 나와 오빠는 금세 잠들었고, 시끌벅적한 말소리에 깬 건 한낮이었다.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자, 큰고모부가 우리를 불렀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아빠도 재혼을 하셔야 하지 않겠니? 너희는 새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저 충격이었다.
일 년도 한 달도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일주일도 못 견디고 떠난 엄마의 삼일장이 막 끝난 바로 다음날이었다.
생전 처음이었다. 장손으로서 예의만 갖추던 오빠가 어른들 앞에서 소리를 높인 것은.
울음이었는지 절규였는지 모를 큰 소리와 눈물이 그를 삼켰고, 나는 그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연히 따지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여동생이었어도, 자신의 자식이었어도 그런 말을 했을까?
그날 알았다.
나이가 들어도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도, 다 어른은 아니구나.
그날은 무례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온 가족이 우리에게 무례했다.
아빠는 한동안 본가에 내려가지 못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동네 창피하다며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홀아비'가 '죄'가 되던 시절.
왜였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아빠 대신, 오빠 없이, 혼자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전라남도까지 왕복 열두 시간짜리 버스였다.
열세 살 여름방학부터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게 내 탓은 아닌데,
나는 엄마의 맏며느리 노릇을 채워내야 했다.
과연 그들은 그 어린 나에게 뭘 바랐던 걸까.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빈자리를, 한 아이가 메워야만 했던 걸까.
어쩌면 그때부터, 이 집안은 나에게 폭력적이었다.
명절에 다 같이 모이기라도 하면, 나는 손녀이기 이전에 맏며느리 대신이었다.
솜씨 좋은 우리 엄마 뒤에서 설거지나 하며 음식을 싸가던 둘째 며느리는 졸지에 외며느리가 되었고,
그런 아내가 안쓰럽기라도 한 듯, 숙부는 나를 대신 부리기 시작했다.
손목이 약한 둘째 며느리 대신 초등학생이 설거지를 했고, 이튿날만 되면 몸살이 나버리는 탓에 식사 준비는 중학생의 몫이었다.
그들의 자녀와 나의 나이 차이는 고작 두 살,
또래의 사촌들이 누워서 TV나 볼 때, 나는 부엌에서 눈치와 함께 국을 데웠다.
딸이 없던 고모들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듯 나를 대했다.
당신 자식보다 열 살이나 어린 내게, "고모도 집에서 혼자 다 해!"라는 말을 시전했다.
그렇지, 혼자 다 하시겠지. 근데, 나도 내가 혼자 다 하는데.
그렇게 나는 주방에서, 구석에서, 무례함 속에 조용히 자라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시골을 찾던 나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무례함 속에서라도 사랑을 찾고 싶었던 걸까,
너무 일찍 가버린 엄마의 빈자리를 티 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바쁘지 않으면 무너질까 두려웠던 어린 나의 객기였을까.
이제는 엄마 있이 살아온 날보다 없이 살아온 날이 더 길다.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들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
가끔은 여전히 무례한 어른들을 보며 틀렸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나를 즐기기도 한다.
그들에게 상처받았지만, 그들 덕분에 단단해졌다.
그들에게 배웠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누군가의 무례가 나의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어른이 된다면 하지 말아야 할 태도,
내게 기회가 된다면 보듬어줄 수 있을 여유,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가끔 손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
그런 작은 능력을 갖춘 어른이 되고자 한다.
바른 길이든, 잘못된 길이든, 세상의 많은 길을 보여준 이들에게
가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였다면, 그 덕분에 나는 옳은 길을 찾아왔다고 믿는다.
그건 미움의 반대편에서야 비로소 배운, 관계의 진짜 교훈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종종 떠올린다.
주방 구석에 서 있던 열세 살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동시에 기특하다.
아무도 그 아이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지만, 결국 스스로의 편이 되어 살아남았으니까.
이제는 그때의 어른들을 용서했다기보다는, 그냥 이해하게 됐다.
사람은 각자의 상처와 결핍 안에서만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들은 그렇게밖에 사랑할 줄 몰랐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누군가의 상처 위에 서서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무례함으로 채워진 관계가 아니라, 이해로 이어지는 관계를 만들겠다고.
엄마 없이 배운 세상의 무게를,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단단히 지탱해 보겠다고.
#브런치작가 #에세이
#가족 #성장이야기 #감성에세이
#회복 #성장 #어린시절 #인간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