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다림질로 말을 걸었다

단 하나의 루틴처럼 남았던 빳빳한 교복

by Dear Mi

다림질을 하고 있노라면 옷 한 장에 이렇게나 많은 굴곡이 있나 싶다.

평평하고 넓은 몸통을 다리다가도 어깨라인부터 점점 좁아지는 소매나 단추 사이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다림질을 하다 보면, 다리미가 내는 스팀만큼 내 등에도 땀이 흐른다.

물을 넣고 열이 오르기를 기다리다 보면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주름이 쫙 펴진다.

사라지는 건 주름이지만 남는 건 열기다.


나는 그 열기를 기억한다.

매일 아침 내 교복은 하얗고 빳빳했다.


엄마가 없어진 집은 많은 것들이 엉망이었다.

설거지는 매일이 아니라 매 끼니 해야 하는 것이었고, 냉장고엔 반찬보단 포장용기가 쌓여갔다.

진공청소기는 생각보다 많은 구석을 놓쳤고 어느새 가득 찬 빨랫감에서는 쉰내가 올라왔다.

이 집에서 가장 익숙한 손길이 사라졌기에 살림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지만

교복 한 벌 만큼은 온전히 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빠는 무너진 사람이었다.

매일 술과 눈물로 잠이 들었고, 눈을 뜨면 다시 술을 찾았다.

술병을 들 수 없을 만큼 취해야 고통 없이 잠들 수 있는 그였다.

밥이 없었고, 청소도 없었고, 말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빠는 다림질만큼은 빠뜨리지 않았다.

두 아이의 교복 한 벌, 겨우 10분 남짓의 다림질. 그게 그의 하루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무너진 생활 가운데 '학교'라는 최소한의 리듬은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루틴이었다.


'엄마 없는 티'는 어디서 나는 걸까.

나는 한동안 그게 주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다림질을 고집한 줄 알았다.

조금 더럽거나 구겨진 교복을 입고 다니면 '역시 엄마가 없어서구나'라고 보일까 봐.

엄마는 생전 모든 걸 다렸다.

정장 입고 출근하는 아빠를 위해 와이셔츠, 바지, 손수건은 물론 속옷까지.

그 세심함을 알았던 아빠에게 다림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정작 학교에 가면 교복을 다려 입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잘 다려진 교복이 새 옷처럼 눈에 띌 정도로, 교복은 그저 걸치는 옷이었다.

'어차피' 구겨지는 옷이기에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선 예외였다.


그때는 몰랐다. 왜 아빠가 다림질을 고집했는지,

매일 술에 취해 있었음에도 무슨 정신으로 교복을 다리고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건 그저 다림질이 아니었다.

그건 아빠가 엄마 대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리미를 꺼내면 그 시절 아침 공기가 생각난다.

아빠의 술냄새는 안방을 가득 메웠고 주방엔 음식 냄새와 먼지가 가득했다.

그러나 내 교복은 항상 적당한 온기와 기분 좋은 빳빳함을 유지했다.

무너진 아빠가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내 아이만큼은 구김 없이 자라길 바라는 작은 고집이었다.


그 다림질이 사랑이었는지, 무너진 채움이었는지.

그 교복엔 눈물 자국도, 구겨진 마음도, 말 없는 손길도 전부 눌려 있었지만

나는 그 다림질 위에서 자랐다.

엄마 없는 집에서 아빠의 손등만큼은 늘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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