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연하게 하라던 그 말이 자꾸 남는다
좋은 인상을 준다는 게, 참 어렵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의외로 조용하고 사유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지만, 겉으로 비치는 모습은 늘 그 반대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나는 ‘교포 출신’이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 외모 덕분인지, ‘섹시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는 그 말이 꼭 칭찬 같지만은 않았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재미없게 산 것도 억울한데, 다가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적인 관심을 앞세웠다.
마치 겉모습만으로도 내가 어떤 관계를 원하고, 어떤 성격일 거라는 식의 성급한 결론들이 내려지곤 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이미지에 끌려온 것 같았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종종 글을 쓴다. 드라마나 예능보다 미술 전시를 즐기고, 대중가요 대신 클래식을 듣는다.
그런데 이런 취향을 드러내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가식과 내숭.
마치 나의 취향은 나의 본질이 아니라, 그저 ‘이미지 관리’의 일부라는 듯이.
나는 그 말들이 억울했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좋아하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 오히려 나의 진심을 의심받는 순간이었으니까.
화려한 외모와 고상한 취미는 양립할 수 없다는 듯,
사람들은 나를 단순한 프레임에 가두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진짜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은 정반대였다.
범생이 같고, 조금은 고지식해 보이는 지적인 사람들.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고, 음악 취향도 대중가요보다 클래식에 가까운 이들.
대화의 결이 맞아야 한다고 믿는 나는,
유행어로 가볍게 웃는 대화보다는 한 권의 책에 대해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았다.
그중 한 남자가 있었다.
나보다 나이는 조금 많았고, 흔히 말하는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 스타일이었다.
옷차림도 단정했고, 말투도 신중했다.
처음에는 그 단정함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 그는 그림 앞에서 나보다 오래 서 있었다.
괜히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고, 나답게 발견한 색감과 구도를 이야기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그 순간 나는 왜인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와의 관계는 깊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점점 여느 사람들처럼 이미지와 인상에 집착했다.
"화장을 좀 더 연하게 해 보는 건 어때?"
"치마 입지 말고 바지 입어."
"하이힐 말고 스니커즈 신자. 내가 사줄게."
이따금의 조언은 시간이 갈수록 요구가 되었고, 나를 향한 조건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나로 있고 싶었고, 그가 좋아했던 ‘생각이 깊은 나’와 ‘글을 쓰는 나’도 내가 맞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건, 나의 내면뿐 아니라 외면까지 바꿔놓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떠났다. 내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둘러싼 세상의 시선과, 그 시선을 의식하는 그의 마음이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좋은 인상을 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나는 여전히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묘하게 씁쓸하다.
진짜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멀고 험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인상을 준다는 건 결국 상대가 나를 어떤 틀에 담아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관계는, 그 틀을 함께 부수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때에만 오래간다.
언젠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나 역시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며 만들어갈 수 있는 관계가 오길,
그래서 이번에는 좋은 인상이 아니라 ‘진짜 나’를 기반으로 한 관계가 되길 바란다.
#브런치스토리 #브런치작가 #브런치에세이
#에세이 #감성에세이 #연애에세이 #연애와시선
#사랑 #사람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