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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정호랭이 Black Tiger Aug 14. 2023

13. 칠순여행 선물로 사 오신 바이킹모자 또 받고싶다

동년배 친구들보다도 10여 년을 늦게 결혼한 진실 씨 아버님은 그래도 자식들은 3남 3녀 6남매를 두셨다. 나름대로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제 짝들은 다 찾아 결혼도 했다. 어렵게 자수성가로 일구신 전답도 크게 많지는 않아도 마을에서는 순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부도 일구신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무슨 일이든 마을일이나 면사무소 일이나 근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앞장서서 대응하셨고, 그렇다 보니 관내에 친구분들 또한 많으셨다.


9년 전 회갑 잔치 때는 자식들이 아직 어리고 큰 아들인 진실 씨도 제대로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 보니 겉으로는 자식들이 차려 주는 회갑 잔치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본인들이 준비해서 주위분을 초청하는 형식의 자축 행사였었다. 자식들이 해준 선물이라고는 진실 씨가 코 질질 흘리는 아들 지민이를 미리 시골로 내려 보내  안겨드린 것이 다였었으나, 이번에 다가오는 칠순은 말 그대로 진짜 축하 잔치를 자식들이 마련해서 행복하고 즐겁게 많은 아버님 친구분과 마을 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6남매는 진실 씨를 주축으로 몇 번을 모여서 칠순 잔치에 대한 논의를 했다.


서울로 모셔서 큰 호텔 뷔페에서 하면서 어깨를 좀 세워드릴까? 아님 시골집에서 소라도 한 두 마리 잡아서 으스대게 해 드릴까? 아님 고향 읍내에서 큰 식당 대관을 해서 하고 기념품을 고급진 걸로 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 드릴까? 등등 수많은 행사 안과 방식이 거론되었으나, 뜻하지 않은 막내의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인해  부모님들께서는 고향에서 대대적으로 알리는 큰 행사는 창피하시다면서 조금은 피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른 체하고 안 하면 자식들로서는 이 또한 도리가 아니었다.


6남매 자식들이 모두 결혼도 다 했고 자식들도 한 명 두 명씩 낳아서 행복하게 잘들 살고 있었고 네가 먼저니 내가 먼저니 하면서 도시에서 자기 집 장만만을 목표로 열심히들 살던 때인데, 막내 놈의 이혼 소식이 전해 지면서 와장창 순박하고 자기애가 누구보다도 강하시던 부모님의 자존심에  흠집을 만들고 말았다.


지금이야 이혼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안 맞는 사람하고 평생을 사느니 갈라서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들 하는 분위로 큰 흠집이 되지 않지만, 당시는 누구네 아들이나 딸이 이혼했다 하면 큰 잘못을 한 죄인처럼 여겨지던 시대였고, 어느 집이나 이런 좋지 않은 일이 자식들한테 일어나면 그걸 시골 부모님들이 쉽게 소화를 시키질 못하고 많은 시름에 빠저 있을 때였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진실 씨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자식들은 화려하고 크게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는 친구분들과 마을 분들을 모시고 관내 누구 자식들 보다도 더 거창하게 기억에 오랫동안 기억되고 회자될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었고 자식들이 그럴 정도의 능력도 이제는 갖춘 상태였지만, 아무리 자식들이 설득하고 수차례 말씀을 드려도 자존심 하나로 스스로 자수성가해서 살아오신 부모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래 그럼 잔치를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갑도 해드리지 못하고 칠순마저 챙겨 드리지 못한다면 평생을 두고 부모님들도 서운해하실 것이고 수많은 주위분들의 눈총과 입방아가 회자될 것은 뻔한데... 그렇다고 팔순까지 기다린다고 한들, 그때 가서 챙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 칠순 행사가 아니면 다시는 두 분 부모님을 위한 행사는 없을 수 있어서 이번 칠순 행사는 꼭 치러야만 했다.


아버님 칠순이 9월이기에 어머님과 아버님 연세 차이가 10년 차이로 1년 차이로 행사를 두 번 치러야 했으나 그 좋지 않은 이혼 소식이 있기 전에  몇 년 전부터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은 본인 칠순 행사 때 다음 연도에 있을 어머님 회갑 대신 마을 입구에 큰 돌에 마을 이름을 새기고 아래 표지석에는 우리 자식들 모두의 이름을 새겨 넣는 마을 이정표를 어머님 회갑 기념으로 하고 싶으시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셨던 터라 칠순행사와 함께  어머님 회갑 기념 기념물도 챙겨야 했다.


여러 안 중에서 부모님 두 분이서 여태껏 단 한 번도 함께 여행하신 적이 없었다.. 항상 집안에는 소 돼지 등 돈 되는 동물들을 키우고 계셔서 그 동물들 밥을 챙겨 주어야 했기에 동반 여행은 꿈도 꾸실 수 없었다.


그렇다 그러면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찾더라도 찾아서 대책을 강구하고 두 분이서 함께 하는 여행을 보내 드리는 방안으로 확정을 했다. 그러면 어떤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고 편안하게 잘 다녀오실 수 있을까?  국내냐?  해외냐? 해외라면 동남아 아니면 가까운 일본 중국 아니면 좀 더 멀리 미국 유럽 등등... 너무 멀리 가면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생전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인데 자식들은 동행도 못하고 노인 두 분이서 가시는데 괜찮으실까? 등등 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렇지만 진실 씨 아버님은 자존감이 강하신 분이었기에 만약 여행을 가신다면 남들이 다 하는 여행보다는 동년배 친구분들이 해보지 못한 여행을 원하실 것 같았다.


"그래 이왕 보내드리는 여행 좀 부담은 되지만 아직 다른 분들이 다녀오지 않았을 유럽으로 여행을 보내드리자" 이렇게 확정을 하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처음에 해외여행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릴 때는 국내 여행 많이 했다면서 해외도 뭐 별거 있겠냐면서 시큰둥하시던 분들이, 친구분들 중에 유럽여행 다녀오신 분들은 없을 것이고, 아마 유럽은 두 분이 처음이실 거라고 강조해서 말씀드렸더니 "유럽, 우리 노인들이 가도 괜찮겠냐?" 하시면서 구미가 당기신 듯 말씀을 하셨다.


"그래 역시 우리 아버님은 자존감이 최고 셔!!!" 처음 듣는 유럽여행이라는 말에 솔깃하신 것이다. 나이로는 칠순에 환갑이시지만 실은 두 분 다 너무나 건강하셨던 분들이다. 평생을 농촌에서 몸으로 하는 일만 하시면서 살아오신 분들이라 건강하신 편이었다.


젊은 시절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서울에서 잠깐 떠도시다 고향에 장착한 후 앓으셨던 폐결핵은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모두 완쾌 되셨고, 어머님은 담석이니 뭐니 많은 병치레를 하셨지만, 아버님의 강직한 성격을 맞춰 사시다 보니 마음속에 속병이 생겨 고생은 하셨지만, 진실 씨가 서울로 모셔 담석 제거 수술을 해 드린 후로 크게 편찮으신 곳은 없었다. 그것 보다도 외가 쪽 여자분들은 대대로 모두 장수하셨기에 아마도 진실 씨 어머님도 장수하실 것이 자명했다.


지금도 유럽 여행은 우리 여행객들에게는 꿈의 코스이지만, 당시에도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는 유럽여행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가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했고 꿈꾸는 여행이었다. 그것도 제일 인기 있는 최고급의 패키지 코스로 예약을 해서 보내 드렸다. 처음 타는 비행시간이 너무 길고 외국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시는 부모님들이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가이드가 한국에서부터 동행하는 코스로 예약을 했기에 큰 불편은 없으시리라 생각했다.


여행 일정이 확정된 날부터 온 동네에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여권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가셔서도 입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셨다.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관내에서 칠순 기념 유럽 여행 보내 주는 자식들은 진실 씨네뿐이라고 모두가 알 정도로 큰 행사가 되었다.


말 많은 농촌인지라 한편에서는 나름 험담을 하는 분들도 없잖아 있었다. "자식이 이혼했는데..."  "칠순이면 친구들이나 동네분들 접대를 해야 하는데"  등등...


그러나 부모님 마음을 자식들이 모두 안다는 것은 좀 무리가 있겠지만 40여 년을 모시면서 살아온 진실 씨 느낌으로는 할 일 없이 남의 얘기하기 좋아하는 주위의 입방아 소리보다는 자식들이 협력해서 보내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는 부모님의 기분이 무릇 험담하는 인들보다, 그래도 조금은 앞선 생각을 하고 계시던 아버님 입장에서는 훨씬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하시고 즐겁게 받아들여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유럽 5개국 8박 9일 일정, 조금은 빡빡한 일정이지만 강인하신 두 분은 즐겁게 다녀오시리라 믿었고 혹시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실까 봐 김이며 고추장이며 이것저것을 챙겨서 짐을 꾸리고 처음으로 가시는 여행에 필요한 속옷이며 여벌의 옷 등등 도 여유 있게 챙기고 물론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이지만 현지에서 필요하실지 몰라 현지 돈도 환전해서 주머니 깊숙이 넣어 드렸다.


출국 당일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보여 주신 아버님의 모습과 미소 짓는 얼굴 표정은, 평상시 고향에서 뵐 수 있었던 햇빛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얼굴에 치아만 하얗게 보이고, 작은 체구로 감당하기 힘드신 특용작물 농사일에 찌들어서 항상 피로한 모습에 지쳐 보이셨는 데, 너무나 활기 차고 하얗던 치아가 더 하얗게 빛나고 밝게 웃으시던 모습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진실 씨가 느끼는 행복 그 자체의 부모님 모습이었다.


출발 시간이 되어 처음으로 자식들 보는 앞에서 잡아 보시는 어머님 손을 꼭 잡으신 체 유럽행 비행기표를 흔들면서 들어가시다 뒤 돌아보시던 아버님 모습은, "저렇게 행복하실 수도 있는데 여태껏 한 번도 챙겨 드리지 못했구나" 하는 자식으로서의 후회가 눈앞을 가리며 머리에서부터 찡한 울림이 오더니 눈에서는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즉 좀, 더 젊으실 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드렸어야 는데...


8박 9일의 시간은 자식들 입장에서는 걱정으로 길고 길었다. 혹여 어디 편찮으시지는 않을까? 음식은 입에 맞으실까? 가이드가 노인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으실까? 언어가 안되니 가이드 설명은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시고 계실까? 등등 안 해도 되는 걱정이 여행 기간 내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원하게 해결해 줄 전화 한 통을 하시지 않았다. 아마 하실 줄도 모르셨겠지만 국제전화 요금이 비싸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가셔서 더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지 않았던가...


도착하는 날 시간보다 좀 일찍 김포공항으로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 시간이 되어 공항 출구를 나오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혹시나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던 자식들의 근심은 어디 있냐는 듯, 떠나실 때 보다도 훨씬 더 씩씩하시고 활기차게 나오셨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진실 씨 집에서 6남매 동생들도 다 모여서 식사를 하고 두 분의 여행담을 듣는데 몇 시간을 들었는지 모른다. 계획대로 5개국은 다 다녀오셨다고 하시면서도 말이 어렵다 보니 나라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은 못하시지만,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은 빠짐없이 다 머릿속에 저장해 오셔서 자식들이며 손주들에게 자랑삼아 말씀을 하시는 모습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덩달아 진실 씨도 고맙고 감사하고 늦었지만 잘 보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유럽 여행기는 진실 씨네 집안에서는 물론 고향마을분들 입에서까지 오랫동안 회자 되었고, 그 이후로도 진실 씨 고향 마을분들 중에서는 동남아나 일본 중국은 많이들 해외여행으로 다녀오셨지만, 유럽을 부부동반 자식들이 보내드려서 다녀오신 분들은 없었다.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 다녀오는 고향에서 나이 드신 아주머님들을 만나 뵈면 유럽여행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때마다 진실 씨는 새로운 감회를 느끼면서도 20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립다.


지금은 뵙고 싶고 보내 드리고 싶어도 곁에 계시질 않아서 보내 드릴 수 없지만, 그때 두 분이서 고심해서 골랐다면서 자식들 선물로 6남매 각자 다른 색상으로 사 오신, 자식들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선물 "바이킹 모자"가 생전에 다시 한번 받아 보고 싶은 고귀한 선물이 되었다.


그립다. 바이킹 모자야!!!  

그립습니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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