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피곤한 독자를 위한 진짜 판타지, <너의 의미>
판타지란 무엇일까. 보통 '판타지'하면 떠오르는 것은 회귀와 빙의, 환생, 현란한 마법, 실존하지 않는 다양한 종족, 신이 나오는 이야기 등등의 '판타지스러움'이다.
그러나 이런 웹소설 특유의 도식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그것을 특별한 판타지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아무렴 판타지의 영단어적 정의 또한 '(터무니없는) 상상, 몽상, 환상'등을 의미하지 않는가.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선한 사람들의 등장,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주인공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세계... 이런 것들에서 독자는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이런 게 진짜 판타지다...'
현실에서 얻기 힘든 것에 대한 욕망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 그것이 웹소설이 갖는 대중적 의의 중 하나다. 혹자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이 인기를 끌고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현실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실의, 실제의 내가 살아가는 이 삶에 대한 불만을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는 설정에 몰입하며 털어내는 것이라고.
물론 그게 모두 옳은 말은 아니겠지만,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전제를 둔다면 다른 사랑받는 소재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남성향 웹소설에서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면서 먼치킨적인 행위를 통해 압도적인 존재가 된다거나, 수많은 여성들에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사랑받는다거나 하는 것, 여성향 웹소설에서는 자신만의 사업이나 재능으로 자신이 속한 가문의 후계자가 되는 성취나 가족과 주변인에게 애정받는 것 등이 있겠다.
이런 엄청나게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고, 처음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나를 업신여기던 상대에게 복수하는 내용만이 독자의 판타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의 외적인 성장과 행보는 물론 독자를 즐겁게 하지만, 내적인 성장 또한 독자로 하여금 욕망을 충족할 수 있게 만든다.
어느 날 갑자기 이세계의 숲 속에 떨어진 '다연'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32년 만의 신탁과 함께 나타나 신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며 그 증거가 될 기적을 행해주기를 바라는 제국민들과 신전, 황제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는 그저 평범하다 못해 우울감을 겪고 있는 현대 직장인일 뿐이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고, 능력을 선보이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던 경쟁적인 현대 사회 속에서 다연은 무기력증과 피로감을 느껴왔다. 그가 보여주는 심리적 서술은 분명하게 그의 우울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또 다연과 비슷한 또래인 2030의 사회초년생이라면 더욱 격렬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독자가 그런 사회에서 탈피한 비일상적 경험을 위해 회빙환이 들어가는 판타지 소설에 빠져드는 것처럼, 다연 또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은연 중의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 침실 속에 틀어박힌다. 먹는 것도 줄이고,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못하게 커튼을 치고, 씻지도 않은 채 이불속에 꽁꽁 숨어서. 매일 울컥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연의 그런 증상들은 실제 현대에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증상이다. 청결과 식사 등 기본적인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게 되고,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끝없이 자신과 주변환경을 곱씹으며 눈물만 흘리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 씻고, 먹고, 햇빛을 조금이라도 받는 것이지만 의지를 좀 갖는 것만으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다면 현대 사회에 우울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의 진전은 그렇게 자신을 꽁꽁 둘러싸고 있던 다연을 황제가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진행된다. 다연과 정반대로 계속해서 단점을 극복하고, 개선하고, 발전해 나가는 워커홀릭 황제는 다연을 이해하지 못한다. 억지로라도 먹이고 강제로 산책을 시키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만든다. 다연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강압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몰이해는 점점 보살핌과 애정으로 변해간다.
만약 다연과 비슷하게 우울감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정도가 다르더라도 다연이 느끼는 그런 무력함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씩 느끼게 된다. 다연의 아픔에 공감하며 자신의 아픔도 함께 보듬어 살필 수 있다. 다연이 황제를 보며 '잔소리하는 엄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황제를 보며 잔소리에 치를 떨다가도 다연과 함께 조금씩 치유되는 과정을 겪는다. 아주 약간의 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글이 갖는 힘은 공감과 이해에서 나온다. 웹소설뿐만 아니라 시, 수필 등의 글부터 선언문, 연설문 같은 글도 진정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를 읽고 듣는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선행된다.
웹소설에서 독자가 대입하는 상대는 주인공이다. 물론 무지막지한 천재적 재능으로 인간 외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주인공도 인기가 있겠으나, 작은 한구석이라도 공감하고 대입할 수 있는 주인공을 만나면 독자는 작품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대개의 독자들이 갖고 있는 '평범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주인공. 그런 그가 냉대하는 시선을 이겨내면서 결국 잠재되어 있던 재능을 발현하는 그 순간은 화려한 능력을 선보이는 것과 다르게 무척 수수하고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독자에게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