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옥집의 주인

by 안종익


<양옥집의 주인>

원래 그 양옥집은 빈집이 아니었다.

그 집 주인은 그 집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좋아했다.

그 빈집은 오래전에는 오래된 촌집이었다. 흙벽은 두껍고, 문도 오래되어서 아귀도 잘 안 맞았고, 문짝이 휘어져서 열 때마다 돌적귀가 삐걱거렸다. 흙벽도 반듯하게 선 것이 아니라 약간 안으로 기우어져 있었다. 네 개의 기둥은 오래되어서 안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벽도 그렇게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안쪽으로 모두 기울어져 있지만 묘하게 서로 잘 받치고 있어서 집이 무너질 염려는 없는데, 겉보기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부엌은 큰비 오거나 장마철에는 물이 자주 나왔다. 밥해 먹는 부엌에 물이 나오면 얼마나 어설픈지 상상이 갈 것이다.

화장실은 재래식이어서 다시 가기가 싫지만, 달리 용변을 볼 곳이 없어서 가는 곳이고,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아예 그 화장실에 못 갈 정도였다. 그런 집에서 그 집 주인은 오랫동안 살았다.


빈집 주인은 그 집에 오기 전에 큰 기와집에 살았다. 그 기와집 구조는 중앙에 뜰이 있고 한자로 우물 정자(井字)의 12칸 기와집이었다. 그 집은 부근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집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의 위치에 자리 잡은 고가(古家)이다. 그런 집에서 시집을 와서 자식을 6남매를 다 낳고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 기와집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 집에서는 사람도 많았고 농사 거리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분주함이나 사람이 분비던 때가 지나가고 사람들도 떠나고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큰 집을 관리를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곳으로 옮겨서 살았다.


이 집에서 자식들이 커서 다 나가고 혼자서 나이 든 시어른과 시조모를 모시고 살다가, 어른들을 멀리 보내고 혼자 집을 지킬 무렵에 자식들이 어느덧 장성해서 집을 다시 지었다. 이번에는 살기 편하게 양옥으로 지으니까, 집주인은 이 집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했었다. 가끔은 자식들이 와서 북적이기도 했고, 늘 명절 때가 되면 집 앞에 차를 세울 곳이 부족해서 다른 집 자식이 먼저 못 세우도록 물건을 갖다 놓기도 했다. 집 앞이 큰길이어서 차들이 너무 빨리 달려서 문제가 되었지만, 그래도 집 앞에 자식들이 타고 온 차가 있을 때가 좋았다. 새로 지은 양옥집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오니까 정도 많이 들었다.


어느 해인지 명절을 보내려고 서울에 있는 큰아들 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명절을 보내고 오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지나면서 한마디씩 했다. “이 집이 비니까 동네가 다 빈 것 같았다"라는 말이다. 이 집이 동네 중간에 있고, 명절 밤에 불이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이 집 주인은 여기서 살다가 어른들처럼 마칠 것이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봄이 오면 어느새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기를 반복하면서 이 집에서 보냈다. 늘 찾아오는 봄과 같이 제비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제비가 유난히도 많이 오는 해도 있었다. 문 위에 지은 제비집에서 제비 똥이 몸서리가 나기도 했지만, 제비와 같이 사는 것이 싫지 않았고 그래도 어느 해 처마를 받히는 물받이 공사를 해서 조금은 좋아졌다.

그 집 처마 밑에 많을 때는 제비집을 다섯 채나 지었다. 제비가 많이 들어오면 자손들이 번성한다는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집에서 나갈 때나 들어 올 때 제비집을 쳐다보면서 자손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몸은 자주 아프고 해서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몸을 가누지 못해서 오랫동안 입원하기도 했다. 다시 집이 그리워서 병이 많이 좋아졌다고 우겨가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병은 깊어져서 이제는 혼자서 거동도 불편했지만 그래도 이 집에서 살면서 가끔은 전동차로 마실 가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다. 그러다가 아파서 다시 병원으로 가기도 하고 요양병원은 여러 곳으로 옮겨 다녔다. 그때마다 그 집으로 다시 오려고 생떼를 쓰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돌아오려고 했었다.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면 그동안 아프던 것이 다 나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 집이 그렇게 좋았다. 이 집에서 그냥 있고 싶고, 또 있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주위에서 그 집에 그냥 살도록 두지를 않았다. 기어이 병원으로 보냈다. 안 가고 싶어도 병이 깊어져 안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는 다시 이 집으로 돌아 오지 못했다.


이 집 주인이 이곳에 살 때, 집안 담장 바로 밑에 봄이면 비닐 한 골 깔고 고추나 상추를 심어서 먹는 재미도 있었다. 고추도 그냥 먹는 고추도 심었지만, 몇 포기는 매운 고추를 심었다. 말려서 먹기보다는 자식들이 오면 그냥 삼겹살 구워 먹을 때에 따서 먹기도 하고, 매운탕을 끓일 때 넣어서 먹었다. 그렇게 여름에는 그렇게 고추를 따 먹고 서리가 오기 전에 마지막에는 삭혀 먹는 고추로 사용했다. 간간이 옥수수를 심어 놓으면 그 옥수수를 수확하는 것보다. 담장보다 높이 자란 옥수수가 오가는 사람들이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을 막아주는 용도로 유용하게 쓰였다.


이 집 주인은 봄이면 담 밑에 있는 개 느릅나무에서 새순이 올라올 무렵이면 언제 그 순을 딸 것인가에 신경을 쓴다. 너무 늦으면 나물로서는 억세서 못 쓰고, 빠르면 양이 적었다. 그런 개 두릅과 오가피 나물을 꺾어서 자식들에게 보낸 것도 여러 해 했었다. 병원에 있어도 올해는 개 두릅을 꺾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은 늘 그 집에 가서 조금만 도움만 받으면 살 것 같기도 하지만 보내 주지를 않는다. 경로당에 매일 가지만 별난 할머니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보고 싶고, 지금도 십 원짜리 화투놀이를 할 것이다. 그 고향 집에 살 적에는 경로당에서 화투로 많이 잃거나 딴 적은 없지만, 그래도 시간 보내기는 최고였고 할머니들이 많이 모이면 한방에서 두 판이나 벌어지기도 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담배 집 형님은 늘 땍땍거려도 부지런히 경로당에 오가면서 보냈는데, 잘 계시는지 궁금하고, 이제는 누가 경로당에 가는지도 모르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병원에 가서 경로당에 못 가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집에서 살던 때가 제일 좋은 때였다.


그 양옥집은 이제 빈집이 되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이 되었다. 그 집 주인을 아직도 병원에 있다. 오늘도 대문이 잠겨 있다. 자세히 보면 집만 빈집이 아니라 그 많던 제비도 오지 않았다. 지금도 빈 제비집은 세 채나 있지만 한 채도 제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제비가 주인이 없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다.

그 빈집은 오늘도 비어있다. 밤이면 불이 켜지지 않고 깜깜하다. 주인은 돌아올 기약이 없다. 제비도 올해는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 제비는 이제 멀지 않아서 강남으로 가야 할 시기이므로 제비가 집을 지을 때도 아니고, 빈집으로 제비가 이사 올 시기도 지났다. 내년에 제비가 돌아올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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