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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17. 2023

남파랑 길 17일차

무전 해변공원은 통영 시내와 붙어 있어서 해변을 걷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항구에 배들도 들어와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곳이다.

잔잔한 무전항에서 시작한 걷기는 상쾌한 아침이다. 항구의 길을 걸어가면서 첫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가장 큰 용기는 모든 걸 용서하는 것” 이란 글귀를 보고 느끼는 것이 많다. 지금까지 가슴에 있는 남을 미워하거나 아쉬워하는 마음은 용서를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용서라는 마음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낸 온 세월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은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마음이 평안함을 얻었다면 용서를 통해서 일 것이다. 용서하는 마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선한 마음이다.

지금까지 내가 불만스럽고 후회하는 것도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가장 큰 용서는 나 자신을 용서하고 내려놓은 것이다. 내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때에 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서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아침은 마음이 경건해지고 세상의 밝아 보인다. 날씨도 구름은 많이 보이지만, 맑은 날씨이다.


해변의 분주한 오르막을 느리게 걷다가 보니까 어느새 길은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오늘도 산이 많은 남파랑 길 코스인 것 같다.

향로봉 밑이 산길을 지나서 발암산으로 올라는 길은 임산도로가 많았다. 아침에 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직 다리에 힘이 있어서 걷기가 좋다.


산속을 걸으면서 “행복은 산 정상에서 느끼는 잠깐이 만족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길에서 느끼는 희망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목적보다는 과정을 강조하면서, 행복은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얻기 위해서 갖은 마음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과정에 있는 것이고, 등산을 비교한다면 올라가면서 주의의 경관이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옆에 보이는 숲과 나무도 흔하게 보는 것이지만 새롭게 보이고, 마음은 현재 느끼는 맑은 공기와 아무도 보이지 않은 고요함도 행복의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침에 남쪽에서 건강하게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니까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다. 행복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만나기 쉬운 것이다.


긴 산길을 끝나고 내려와 도로를 가로질러 내려가니까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을 지나면 다시 산길을 올라간다. 산길을 오르는 초입에 꽤 큰 관덕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지나서 산길을 오르면 산속에 백우정사 라는 작은 사찰이 산속에 묻힌 듯이 자리하고 있다. 산속의 정상에서 산 너머로 통영의 앞바다가 보인다.


산의 임산도로가 끝나고 원동마을이 나오고 바다가 보인다.

바닷길을 따라가니까 아름다운 섬과 양식장이 나온다.

해안 길 옆 마늘밭에는 푸르고 싱싱해 보이는 마늘이 자라고 있다. 이제 마늘은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한참 자랄 준비를 마친 듯하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 휴게소가 나오고, 남파랑 길 30코스가 끝나는 지점이다. 여기는 아직 통영 길이고, 남파랑 길을 삼분의 일을 걸어온 것이다.


남파랑 길 31코스를 시작해서 얼마 가지 않아 통영 구간은 끝나고, 다시 고성 땅으로 들어갔다. 고성에서는 약간의 언덕을 넘어서니까 물이 빠진 해변이 나온다. 이런 길을 계속 걸어가면 해안 둑을 계속 걸어가는 길이 이어진다. 걸으면서 다음에 어디로 갈 것인지 보이는 해안둑 길이다.

긴 해안 둑길을 걸어가면 바다를 배경으로 한 도어스라는 카페가 바다가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해변에 좋은 장소에는 이런 점포들이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고성만이 보인다. 고성 만에는 해안 바다 위에 테크 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 길은 “해지게” 해안 둘레길이라고 이름 지어 놓았다. 그 길을 걸어보면 바다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곳에서는 천천히 걸으면서 바다 밑도 보면서 지나가는 물고기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고성만은 앞에 있고 뒤는 산이 배경을 한 보기 자리를 잘 잡은 동네도 보인다.


“해지게” 해안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에 “평생 후회 안 하기”라는 안내판으로 남산공원 산책을 유도하고 있다. 남파랑 길이 그쪽으로 나 있어서 올라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기대가 된다. 중간에 구름다리도 건너고 올라간 정상에는 “남산정‘을 멋들어지게 지어 놓았다.

확실히 땀 흘려 올라온 보람이 있었고, 초입에 있는 라이온스 기념 사자상이 너무 말랐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산공원에서는 바다고 보이고 고성읍도 보이는 곳이었다.


고성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고성에서는 33번 국도 옆으로 ”대독 누리 길을 만들어 놓아서 한적하게 걷기 좋았다.

이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 봄이 오는 것을 맞이하려고 걸어가는 것 같은 마음이다. 걸어가는 길은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도로가 있고, 양쪽에 논밭이 있는 길을 작은 개울과 같이 걷는다. 그러니 길은 소음도 거의 없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 봄이 오는 길을 행복하게 걷는 것이다.

대독 누리길이 끝나고도 길은 도로 옆으로 난 길을 걸어간다. 부포 마을에서 남파랑 길 32코스가 끝났다. 부포 마을 주변은 농사하는 곳이라 묵어갈 곳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고성으로 돌아가서 쉴 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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