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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18. 2023

남파랑 길 32일차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90번 버스가 예상보다 더 빨리 와서 시작이 좋다. 오늘도 약간 추워서 장갑을 사용했다. 궁항 마을까지는 상당한 거리여서 시내에서는 버스 손님들이 있었지만, 외곽으로 가면서는 혼자 타고 갔다. 궁항 마을에서부터 갯벌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어제만큼 맑지 않고 구름이 많아 먼바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다니면 날씨가 좋은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과 날씨가 좋아도 미세먼지가 있으면 또 전망이 좋지 않다. 미세먼지 없고 날씨 좋은 날은 어제 같은 날이다.

오늘도 해안선을 따라서 걷는 길은 갯벌이 많이 보이는 길이다. 북촌마을에서 반월 마을로 내려오면 바닷길이 길면서 앞이 트인 곳으로 먼바다는 흐릿하게 보인다.


봉전 마을 쪽으로 갈 즘에 구름이 옅어지는 것 같다. 봉전 마을 앞바다에 해상 테크 길이 설치되어 있고,

가까운 바다에 물이 빠진 항구에 정박하지 못한 고기 뱃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지금 걷는 길이 ”갯노을길“이지만, 이 구간의 또 다른 이름은 ”두랭이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두랭이는 ”도롱이“의 전라도 방언으로 비올 때 쓰는 짚으로 만든 우비를 말한다.


광암 마을 앞에도 갯벌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두봉 마을이 멀리 보이면서 여수도 끝나가고 있다. 여수의 여자만의 마지막은 갯벌과 같이 걷는 길이고, 건너편 순천을 바라보면서 걷는 길이었다.

여수는 걷기도 좋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낭만을 강조하는 곳이고, 볼만한 곳도 많은 곳이다. 낭만포차 거리도 인상에 남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종류별로 다 본 것 같다. 남파랑 길 안내도 잘 되어있고, 숙박 시설이 어느 곳보다 많은 느낌을 받았다. 여수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여수의 율촌면의 다리를 건너면 순천 해룡면이다. 해룡면에 들어서면 와온 마을에 나온다. 여기서 남파랑 길 6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고 순천 습지의 갈대숲이 기다리는 구간이다. 와온 마을 입구부터 갯벌이 시작되지만, 갈대숲도 함께 나온다.

와온 마을은 앞에는 순천만의 갯벌이 있는 곳으로 잘 정비된 테크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공원 겸 전망대가 있는 와온 해변이다.

그곳에 서면 순천만의 갯벌이 넓고 크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 곳이다.

그 해변에는 매실나무 밭과 테크 길을 따라가면 계속 순천만의 습지로 가는 길이다.


이제 날씨는 제법 맑아져서 먼 하늘이 푸르게 보이고, 물 빠진 갯벌에는 멀리 조개 캐는 사람들이 꼼지락거리는 것이 보인다. 이 길은 순천에서는 ”순천만 갈대길“로 부르는 것 같다.


계속 걸어가면 용산 전망대가 나오고 순천만 습지가 나온다. 순천만 습지는 갈대를 베고 정리 중이어서 갈대 구경을 하지 못했지만, 그 규모로는 순천의 명소이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유가 충분했다.

또 이곳은 유네스코가 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갈대 습지를 지나서 멀리 철새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나온다

철새들은 두루미같이 보이고 사람들이 접근을 막기 위해서 도로변에는 갈대로 가림막을 만들어 놓았다. 그 갈대 가림막 사이로 철새를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있었다.

이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통제하여 순천만 제방 둑길 걷는 것을 제한하고 있어서 논길을 따라 길이 임시로 변경되어 있었다. 임시로 변경된 논길에는 미나리를 재배하는 하우스가 많이 보인다. 이 코스는 평소 길보다 많이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외국 인부가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여기도 농촌에 단순한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한 것이다.


순천막 둑길은 장산 마을부터 걸을 수 있게 통제를 풀고 있었다. 제방길이 잘 정비되어서 걷기도 좋고 갈대숲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중간에 있는 짱퉁어 마을에 장뚱어 모양을 실감 나게 만들어 놓았다.

장상 마을을 지나면 우명 마을이 나오고 여기서는 해안으로 걷는 길과 약간 위의 도로길 따로 있다.


해안 길은 순천만의 갯벌과 같이 걷는 길이고, 갯벌이 아니고 바닷물이 덜 빠진 갯벌은 바다에 발을 쳐서 고기 잡이를 하는 곳이 보인다.

바다에 발을 쳐서 걸린 고기는 완전한 자연산이고, 순천에서는 이런 고기를 ”발고기“라고 부른다.


순천만의 61코스 종점은 화포 마을이다. 화포 항은 순천만의 잘 보이고 앞이 트인 곳으로 해돋이 행사를 하는 곳이다.

마을은 깨끗하고 잘 지어진 집들이 한눈에 보이는 경사진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숙소를 찾아 지나가는 분에게 물어보니 펜션이 한 곳 있지만, 그 펜선도 사정이 있어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은 순천 시내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까 한 시간 뒤에 있다고 해서 화포 정류소로 가서 혼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에 조용히 승용차 한 대가 서는 것이다. 창문이 내려오더니 ”어디 가는 길이냐"라고 묻는 것이다. 차에는 할머니 한 분이 혼자서 타고 있었다. 순천 시내로 들어가려고 버스 기다린다고 하니까 태워 준다고 한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다. 나이 든 할머니가 순천에서 조용한 외곽으로 드라이브 나온 것이다. 자식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혼자서 산다고 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혼자서 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여유가 있고 젊어서는 어느 정도 열심히 산 할머니처럼 보였다.

시내 숙소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고 가신다. 오늘처럼 이렇게 걷다가 좋은 일이 생긴 것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앞일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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