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이 지난 지 5년이다. 평소 걷는 운동은 자주 하고 일은 집에서 밥하는 것 외에는 하는 것이 없다.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 가끔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돈을 쓰지만, 돈을 버는 경제활동은 일체하지 않고, 가끔 친구들과 모임 나가서 수다를 떨면서 식사 대접을 해도 경제력은 된다. 아들 둘이지만 출가까지 시켰고, 번듯한 직장을 갖고 멀리서 잘 살고 있다. 남들이 보면 걱정 없이 사는 아줌마이다. 내 한 몸만 아프지 않으면 먹고사는 것에는 걱정 없이 늙어가는 중이다.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때로는 사는 것이 지겨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마치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저승사자가 운전하는 열차를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꼴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지도 않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다리가 저린 것이다.
걷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저려서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가보니까 디스크라고 한다. 수술은 여러 사람이 만류해서 시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시술하고 며칠은 좋아졌는데 다시 전과 같이 저린 것이다. 못 걷은 것도 아니고 다리만 저린 것이니까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여러 가지 좋다는 운동이나 치료를 했지만 변화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상생활은 변화가 없는데, 이 디스크가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혹시라도 간밤에 자면서 저린 것이 사라졌는지 가만히 다리에 힘을 주면 기분 나쁘게 어제와 같이 저린 것이다. 이때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왜 나이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는데 이런 신경질 나는 병에 걸려는지 울화통이 터진다. 이때부터 신경이 온통 저린 다리에 가 있다. 온종일 관심이 그곳에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영원히 저릴 거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고 하지만,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다리 저려 오면 다시 신경질 난다. 이 저린 다리 때문에 행복한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즐거운 것도 별로 없다.
나이가 들면 아픈 것은 정한 이치이지만 그래도 너무 나는 빨리 아픈 것이다. 이 저린 다리는 더 심한 병에 고생하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알지만, 나는 오직 내 다리 저린 것에만 매몰되어 있다. 다른 사람 무슨 병 말기만큼이나 나에게는 저린 다리가 같은 것이다. 이런 식의 마음이라면 만일에 다리 저린 것이 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저리면 죽을 때까지 신경질이 날것이고 오직 저린 다리를 고치려는 생각에 매몰되어 살다 죽을 것이다. 다른 즐거움이나 소소한 행복은 저린 다리 다음이다.
젊어서부터 큰일 안 하고 농사일을 한 적도 없이 편하게 살았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한 것이다. 속에서 천 불이 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네 친구들은 아직도 팔팔하게 다니는데 나만 다리가 저리니까 약도 오르고 억울한 마음도 든다. 나는 키가 작아서 키 큰 사람보다 허리도 짧은데 그 허리에 디스크가 왔다는 것이 억울하다. 젊어서 짧은 허리 때문에 손해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늙어서는 아프지 않아야 공평한 것이 아닌가? 현재 나의 상태는 온갖 이유와 핑계만 있으면 신경질을 낸다.
구십하고도 오 년이나 살고 있는 시어머니도 아프다는 곳이 없는데, 내 다리는 왜 아픈지 온종일 짜증만 난다. 전에는 주위에서 밥도 먹고 차라도 한잔하자는 연락이 있었는데 다리가 저리고부터는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니 어쩌든지 나아야 하는데 일 년이 더 지나도 똑같으니까 더 환장할 일이다. 이러다가 생병이 나서 시어머니보다 내가 먼저 죽겠다는 마음마저 든다.
전에는 늙어서 어떤 곳이 아프면 그 아픈 것은 같이 가야 할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 병을 인정하고 감내하면서 다른 즐거움이나 행복은 찾아야 한다고 하는 말에 공감을 했다. 내가 다리가 저려보니까 그런 말은 헛소리라고 생각된다. 일단은 저린 다리가 났아야 된다는 생각만 있다. 이것이 나아야 행복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는 마음만 든다.
병이 오면 병과 같이 가야 한다는 소리는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여서 말하는 희망사항이고, 젊었을 때에 생각할 수 있는 말이다. 막상 아프면 누구나 그 아픈 병에 온 신경을 쓰고 그 병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아프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참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좋은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아프면 아프다 하면서 병을 고칠 때까지 신경을 쓸 것이다.
나는 점잖은 사람이 나이 들어서 큰 병을 앓아도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 연기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속으로는 아픈 것만 생각날 것이다. 아프다고 소리하고 인상이 찡그러진 사람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내가 아프다 보니까 생각도 변하고 있다. 자식들이 외식했다고 카톡에 올리거나 어디 놀러 갔다고 하면 그 돈을 저축해서 집이나 장만해야지 정신없는 짓 한다는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맛있는 거 먹고 젊어서 놀러 다녀야 하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외식이나 놀러 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젊은 것들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마음이다. 월세를 살아도 자가용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젊어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다리가 저려 보니까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쪽을 마음이 변했다.
명절 때 손자들이 와도 처음에 올 때 반갑고 하룻밤만 지나면 인제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늘 나만의 공간에서 손자들이 뛰어다니는 것이 혼란스럽고 익숙하지 않다. 또 무엇이라도 챙겨주어야 하는데 이제는 그것도 하기 싫다. 반가운 것도 처음 만났을 때이고 그다음은 빨리 갔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고, 나도 한푼도 줄 생각이 없다.
내 다리가 아프니까 다른 사람 중병보다 더 아픈 것 같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관심이 없어진다. 오직 내 다리 저린 것만 났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온 신경을 쓰며 살고 있다.
남들이 보면 정상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정상이다. 모두가 자기가 아프면 그것에 신경 쓰지 다른 것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이 들어서 큰 병이 오면 죽을 때까지 그 병만 생각하고 싸우다가 죽는 것이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니 큰 병이 오기 전에 즐겁게 살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바보라고 생각하고 싶다.
병을 죽을 때까지 친구나 동반자로 생각하고 그 상태에서 다른 행복을 찾으라는 말하는 사람이 지금 앞에 있으면 한대 치고 싶다. 그저 하는 소리이다. 병은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병은 친구가 아니니까 늦게 만나야 한다. 짜증 내면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린 다리가 나으면 신경질 내지 않고 살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또 다른 곳이 아프면 그 병을 났게 하려고 힘쓰고 짜증 부리다가 나으면 또 그냥 살 것이다. 그다음에 또 다른 아픈 곳이 찾아올 것이고 이렇게 반복하다가 내가 지면 끝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다리 저린 것과 싸우고 있다
구십까지만 안 아프고 살면 되는데 그것이 힘든다. 구십을 넘겨서 산다고 생각해 보면 지겹다고 느껴질 것이다. 육십 년을 지금처럼 살았는데 앞으로 삼십 년을 이대로 살라 하면 사는 것이 의미 없다. 다르게 사는 것이 좋은데 가능성은 적다. 시어머니가 구십을 넘겨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살아있는 귀신이 사는 것 같다. 지금도 하루에 운동을 두 번씩 하러 나가는 것을 보면 아직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바라는 것은 저린 다리가 안 아픈 것 외에는 없다. 세상에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오직 다리만 안 저리길 바란다. 품위 있는척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그저 내 마음 가는 데로 살고 싶다. 다리 저리면 신경질도 내고 짜증도 내면서 살 것이다.
지금도 내 저린 다리가 났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