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되어 간다

by 안종익


고속도로를 지나서 서울 외곽 순환도로로 진입하면서 서울에 온 실감이 난다.

일 년 만에 오는 서울이지만 여전히 도로는 복잡하다. 그래도 집 가는 고가도로에 무난히 진입했으니까 집까지는 밀리지 않고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아직 퇴근 시간이 되려면 두어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참을 잘 가던 도로가 어느 순간에 앞에 차들이 가득하고 전광판에는 몇 킬로가 밀린다는 표시가 들어온다. 평소에 이 시간에는 차가 밀리는 도로가 아닌 것 같은데 오늘은 밀린다. 서울의 도로는 정해진 것이 아니고 여러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인 것이다.

이렇게 예측하지 않은 상황에서 차가 밀리면 짜증이 날 것도 같은데, 오늘따라 별로 짜증도 없고, 급한 생각도 없다. 오랜만에 집에 가면은 가슴이 설레거나 여러 가지 생각도 날 것도 같은데 그냥 덤덤한 마음이다. 언 듯 생각나는 것은 우리 집이 8층이라는 것은 생각나지만 몇 동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위치는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현관에 들어가는 비밀번호와 우리 집 현관문 번호는 기억하지 못한다. 잊어버린 것이다.


집에는 도배를 하고 소파와 식탁이 들어와서 그런지 낮 설은 느낌이다. 도배는 분위기를 밝게 하면서 벽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아서 깨끗한 느낌이다. 집에 들어온 첫 느낌은 포근한 느낌이나 아늑하다는 것은 못 느끼고 썰렁함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 너무 넓어 보이고 잠시 머물다가 갈 것 같다는 생각이 언 듯 들었다. 너무 오래 떠나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낯선 것이 이상했다. 마치 이웃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여러 가지 일로 최근 삼 년을 이 집에서 살지 않아서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이 집은 집값이 오르기 전에 다행히 샀지만, 그 뒤에 팔려도 내놓은 적도 있었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오래 살던 집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집에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 주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와 반가운 마음보다는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들은 군에서 오늘 돌아왔다.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다가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동안 집에 오고 싶었겠지만 코로나로 오지 못하고 중간에 휴가 없이 바로 집으로 제대한 것이다. 군에서 별로 애로사항이나 곤란을 말한 적도 없이 바쁘게 생활하다가 돌아온 것 같다. 그전보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라는 것도 정해졌다고 하니까 열심히 잘 해라는 말을 해주었다. 알아서 가야지 어떤 방향을 제시하면 잔소리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하기가 조심스럽다. 실제로 알아서 잘 갈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굳이 내 의견을 이야기해서 꼰대 소리를 듣기는 싫은 것이다. 아직도 간섭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든 것도 아닌데도 하기가 주저되는 것은 몇 년 전의 어린 아들이 아니고 어른 된 느낌 때문이다. 앞으로 자주 못 볼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자기의 세상을 잘 살길 바랄 뿐이다.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기 때문에 살아가는 영역이 다른 분위기에 산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간섭할 일도 없고 간섭을 해도 될 일도 아니다. 이제 현실에서는 가족에 우선을 두고 살기에는 너무 느슨해져서 제각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게 되었다. 그냥 울타리만 가족이 되고 무늬만 모양새를 갖추고 살아가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함께하는 새로운 것이나 목표도 없이 살아온 것이다. 살아온 패턴이나 가족의 형태는 변하지 않았지만, 종교나 여러 가지 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나 의지가 옅어진 것이다. 이제는 밥도 내가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내가 어디 가는지 궁금하지 않다. 같은 관심이나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저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가서 저녁을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최선으로 할 수 있고 공감받는 일인 것 같다. 가까운 곳으로 가 외식을 하기로 하고, 가능한지 가족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오랜만에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딸은 회사에서 일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 회사일이 아마도 오랜만에 올라온 아비와 같이 식사하는 것보다 더 중한 시절이 될 정도로 세월이 간 것이다. 밤이 늦어서 딸은 돌아왔다. 회사일이 바빠서 그런 것이겠지만 힘들어 보였고 인사는 했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평범한 인사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낯선 마음이 들면서 아비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세월이 간 것이다. 그 낯섦이 예전의 내가 아니고 나의 역할도 이제 끝났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했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와 함께 제 방으로 들어가는 딸을 보면서 나도 아쉬움이나 어떤 마음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라는 자조만 떠오를 뿐이다. 내가 나로서 예전의 위치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을 아는 것도 나는 늙어가는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그날 밤이 가장 낯선 이방인으로 되어 감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렇게 낯선 마음이 드는 집이나 멀어진 느낌이 있는 가족을 보면서 세월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 보통 늙어가면서 “마음은 한창”이라는 말을 하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이곳이 이방인처럼 느끼는 감정은 나이 든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의미일 수 있다.

이제 관심을 받을 이유도, 존재에 대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지 않을 세월의 위치가 되었다. 오히려 관심을 갖는 것은 어색하고 나에게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어져 가기를 바라고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조용해지는 것이 순리고 잘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엔 울타리가 되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울타리를 허물어 버리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담장 없는 시골집이 되어 가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의 마음은 나를 위하거나 관심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이방인이 되어 간다. 이런 낯설고 정이 가지 않는 분위기는 옆집에 세상 시름 내려놓고 살아가는 노인으로도 만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남의 일 보듯이 바라보면서 어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이방인으로 살고 싶다. 이제부터라도 혼자가 되는 연습을 하면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간혹 인간적인 따뜻함이나 그리움은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이방인 되는 것이다.


다음날에는 모두가 바빠서 본인들의 할 일을 찾아서 나가고 집에는 혼자가 되었다.

혼자 있어도 외로운 생각보다는 할 일 없이 있다는 것이 더 힘들다는 느낌이다. 어디 갈 때도 없고 가야 하는 곳도 없다. 온종일에 연락이 오는 곳도 없고, 아내에게서 끼니 해결 여부를 묻는 연락은 있었다. 점심도 혼자 있으니까 별로 생각이 없고 혼자서 찾아 먹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어려움이나 그 어떤 불만도 없다. 단지 이곳에 혼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시골에서 혼자 있는 것이 나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곳으로 가고 싶다. 저녁이 되어서 다시 가족들이 모여든다. 모두가 피곤해서 쉬기가 바쁘고 서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시골에 내려가고 싶다는 뜻을 비추니까 내려 가지 말라는 분위기이다. 그래도 내가 있으면 아직 불편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분위기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나였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딸이 출근하면서 시골 내려가지 말라고 말을 하면서 출근을 한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고 하니까 시골집에 동파 걱정된다고 하면서 다시 시골로 향했다. 도심을 빠져나오면서 마음이 후련했다. 이제 어느 곳도 정을 붙일 수 없는 이방인 된 기분이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동심의 이방인이 되고 싶다. 어쩌면 역할을 다한 사람이 느끼는 후회 없는 감정을 갖고 싶지만, 아직 그런 것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한 마음인 것이다. 이제 희망 사항은 바라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어디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마음 가는 것에 따라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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